상처의 방에서 말들이 다시 살아나다…유선혜 두번째 시집

뉴스1       2025.12.10 09:14   수정 : 2025.12.10 09:14기사원문

[신간] '모텔과 나방'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유선혜가 두 번째 시집 '모텔과 나방'을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펴냈다. 이번 시집은 모텔 연작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폭력·결핍과 그럼에도 끝내 살아가려는 마음을 집요하게 비추는 32편을 실었다.

시인은 모텔이라는 특수한 방에서 현실을 직면한다.

그는 타인의 시선이 가장 느슨해지는 장소를 '세계의 축소판'으로 바꾸고, 그 안에 내재한 허위·혐오·폭력을 해부한다.

표제작에서 화자는 "그냥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체념과 의지 사이의 진동을 기록한다.

시선은 방에서 몸으로, 몸에서 언어로 확장된다. 2부에는 '모텔과 인간', '모텔과 리모컨', '모텔과 변기', '모텔과 냉장고' 같은 연작이 포진했다.

리모컨의 채널 선택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욕망은 사실 규격화된 선택지의 반복임을 보여 주고, 거울과 변기 같은 사물은 자기혐오와 정화의 상징으로 바뀐다.

시 '없는 것들의 목록'은 떠나간 사람과 사라진 마음, 잉크가 번지는 자국 같은 결손의 흔적을 하나의 문장으로 묶는다.

시 '준법 소년'은 "나비 괴물"의 화상을 끌고 다니는 존재를 통해, 순응과 일탈이 동시에 강요되는 성장의 역설을 선연하게 드러낸다.

사랑의 잔해와 회복의 기술도 더 깊이 묻는다.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화자는 "사람다워지지 않으려는 점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시 '복약지도문'은 상처의 복용법을 처방전 형식으로 패러디한다.

저자 유선혜는 1998년 서울에서 태어나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데뷔했고,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로 주목받았다.

△ 모텔과 나방/ 유선혜 지음/ 현대문학/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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