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란 이름 허투루 팔지마"…김지미 긍지로 살았다
뉴시스
2025.12.10 12:59
수정 : 2025.12.10 12:59기사원문
한국영화 전설 배우 김지미 별세 향년 85 영화 700편…1960~70년대 한국영화 얼굴 "내 연기 부족…완성도 못갖춰" 매번 겸손 2019년엔 "이제 종착역…날 간직해달라" 후배들 향해 "배우로서 늘 긍지 가져라" "배우는 최고의 소재 값싸게 굴리지마"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992년에 나온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는 배우 김지미(85)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김지미의 경력은 사실상 1990년대 초반에 끝을 맺었지만 연기를 향한 그의 열정은 그 이후로도 오래 이어졌다. 그는 종종 "나는 계속 배우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했다.
김지미의 공식 출연작는 370편이고, 비공식 700여편으로 추산된다. 이 한국영화의 전설은 그렇게 700번을 새로 살고도 언제나 겸손했다. "내 연기는 아직 부족하다. 완성도를 못 갖췄다."
한 마디로 김지미는 1960~70년대 한국 최고 배우였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그는 압도적인 미모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다. 외모만 빼어났던 게 아니었다. 김기영·김수용·임권택 등 당대 최고 감독들과 작업하며 연기력도 두루 인정 받았다.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은 김지미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그가 출연한 영화 20편을 상영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김지미는 "100살이 되어도 영원히 철이 안 들 것 같다. 나이가 먹어도 아직 많은 걸 배우면서 산다. 철이 났으면 배울 게 없지만, 철이 안 났으니 계속해서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김지미는 배우라는 자부심으로 산 영화인이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후배 배우들을 향해 "배우는 늘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소재는 바로 배우다. 그 소재를 값싸게 굴려서는 안 된다. 항상 소중하게 대해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 배우라는 이름을 허투루 팔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김지미는 영화인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대위 공동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 영화 행정에도 적극 나섰다. 그가 나선 게 아니라 동료 영화인이 사실상 그를 추대했다. 동료 선후배 영화인들은 배우이자 영화인으로서 김지미가 가진 긍지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1985년 영화사 지미필름을 창립한 그는 다방 종업원의 삶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을 만들었다. 김지미는 이 작품을 "검열과 싸운 끝에 나온 영화"라고 했다. 2022년 세상을 떠난 한국영화의 또 다른 전설 배우 강수연은 생전 김지미를 향해 "선배님께서 작품으로, 나아가 영화계로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미는 영화계를 향해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 어른이기도 했다. 그는 데뷔 60주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영화에 대해 "관객 입맛에 맞춘 액션영화만 계속 나오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화에는 소년·소녀도 필요하고, 2040세대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90대 노인도 필요하다. 최근 작품은 다른 걸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흥미 위주로 흘러가니 나 같은 나이 든 배우들은 설 곳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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