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정치 문해력 향상과 교원 정치기본권

뉴스1       2025.12.16 07:01   수정 : 2025.12.16 07:01기사원문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올해 6월 3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전국제통상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선거독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5개 교원단체 (교사노동조합연맹,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좋은교사운동) 조합원들이 지난 5월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사 정치기본권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편집자주]나침반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도구입니다.

방향은 제시하지만, 특정 경로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칼럼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와 나아갈 길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 특히 온라인 정보 판단 능력이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설문 조사에서 '온라인에서 읽은 것을 믿는다'고 응답한 우리나라 학생은 50.9%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9.8%)보다 상당히 높다. 여기에 더해 국내 일부 조사에서는 청소년층에서 선거 개표 부정 가능성, 반중 정서 등 검증되지 않은 주장까지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확인되기도 했다.

디지털 문해력, 특히 극단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정치 문해력을 향상해야만 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이를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기관이 학교다.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는 정치적 사안을 다루기 힘들다. 교사들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었던 2024년 12월에 제기된 민원만 34건을 기록했다. 대선이 치러진 올해 6월에도 20건이 접수됐다. 교직단체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우리 현실에서 교사는 정치와 관련된 언급을 사실상 거의 하기 어렵다.

10대 청소년들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하려면,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첫째, 교사가 교육과정 속 정치 관련 쟁점을 회피하지 않고 다룰 수 있는 환경. 둘째, 국민이 우려하는 '편향 교육 가능성'을 줄일 제도적 안전장치다.

미국과 독일 교육이 주는 시사점

미국은 학생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지식, 기술, 태도를 길러주는 교육을 시민교육(civic education)이라고 한다. 관련 교육을 실시할 때 참고할 구체적인 기본 원칙과 사례가 제시돼 있어서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다. 정치적 중립성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애매할 경우 교사는 수업 전 관련 기관을 통해 수업 내용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구할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도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업을 받았다고 생각할 경우 해당 기관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이를 담당하는 기관은 연방 특별검사관실(Office of Special Counsel)이다. 이 기관은 공무원의 정치활동 규제법인 해치법(Hatch Act)을 집행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교원은 각 주의 '리틀 해치법' 또는 주나 교육청의 윤리 지침의 적용도 동시에 받는다.

독일의 경우에는 시민교육을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라고 부른다. 정치교육의 목적은 정치적 판단 능력, 행위능력, 방법적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정치교육은 1976년에 만들어진 보이텔스바흐 합의 3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학생에게 특정 견해를 주입하지 말 것(주입·강제 금지 원칙),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룰 것(논쟁성 원칙), 학생이 자기 삶의 조건과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것(학습자 중심 원칙)이 그것이다. 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원칙 준수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생기면 학교 내부–학교 감독기관–민원 처리 등 단계적 절차로 다루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교원 정치활동 가이드라인 센터' 필요

우리도 교원의 정치기본권 확대를 논의한다면, 그 전제는 분명해야 한다. 국민이 걱정하는 편향 교육을 막을 명확한 기준과 작동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칭 '교원 정치활동 가이드라인 센터' 같은 상설기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는 첫째, 교원이 교육과정 속 정치 쟁점을 다룰 때 참고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사례집을 제공하고, 둘째, 애매한 사안에 대해 사전 자문을 제공하며, 셋째, 민원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사실관계 확인과 조정·권고를 지원하고, 넷째, 연수와 공개 자료를 통해 학교의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존 기관에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교원 정치기본권 확대는 '사적 영역'부터

교원 정치기본권 확대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납득 가능성'이다. 사적 영역에서 직무와 무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부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예컨대 근무시간 외의 SNS 의사 표명이나 후원금 기탁 같은 행위는 논의를 통해 일정 범위에서 허용할 여지가 있다. 대신 수업에서는 특정 정당·정치인을 선전하거나 학생에게 정치적 선택을 유도하는 행위를 명확히 금지하고, 논쟁적 사안은 다양한 관점을 근거 중심으로 다루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또한 교육감 선거 출마 등 공직 출마와 관련된 범위는 별도의 안전장치(휴직·이해충돌 방지·선거운동 제한 등)를 두고 신중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교직단체 역시 '정치기본권 확대'를 자기 권익의 확장으로만 설명해서는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목적을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에 두고, 그에 맞는 원칙과 책임, 인프라 구축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번 논의가 교원의 권리 확대에서 끝나지 않고, 학생들의 정치 문해력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가인재경영연구원 교육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광주교대 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대한교육법학회장, 한국교원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고의 교수법, 리더십 등을 주제로 10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실력의 배신'(2018), '생성 AI 시대 최고의 교수법'(2024) 등 20여 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과 1000편 이상의 각종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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