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계’ 흥행 참패가 남긴 과제

파이낸셜뉴스       2025.12.17 18:31   수정 : 2025.12.17 18:31기사원문

국내 첫 인공지능(AI) 장편영화 '중간계'의 참패가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AI 기술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중간계'는 AI 기술의 성급한 상용화의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관객들은 AI로 제작된 십이지신과 저승사자들을 유튜브 쇼츠에 나오는 영상을 연상시키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결국 이 영화는 개봉 첫 주에 관객수 1만명 미만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해외에서도 AI는 이미 영화 제작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을 차지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5명의 시각효과팀이 AI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완성한 작품이다. 올해 개봉한 톰 행크스가 67세에서 19세로 되돌아간 영화 '히어(Here)'는 메타피직의 실시간 디에이징 기술로 제작비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했다. 기존에는 수개월이 걸리던 후반작업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며, 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즉석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AI의 가장 큰 장점은 창작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춘다는 점이다. 우주, 심해, 화산 등 촬영 불가능한 장소를 구현해 상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됐고, 특히 SF와 판타지 장르에서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

제작비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 핵심 연기는 인간 배우가, 시각효과는 AI가 담당하는 형태라면 제작비를 현재의 30~5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AI 전문 스튜디오 '스테어케이스'는 4년간 30편의 영화를 각각 50만달러 이하의 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예산의 100분의 1 수준이다. 또 AI는 제작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성에도 활용되고 있다. 영화 '더 라스트 스크린라이터'는 챗GPT가 최초로 각본가 크레디트에 오른 작품이다.

그렇다면 AI가 인간 배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17일 개봉한 '아바타: 불과 재'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 질문에 균형 잡힌 답을 제시했다. 그는 "관객이 화면에서 보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배우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라며 "아바타는 생성형 AI가 단 1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져도 인간 배우의 감정과 연기력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다.

다만 캐머런도 AI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VFX 비용은 급증한 반면 극장 수익은 30% 감소해 판타지와 SF 영화가 지속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비용절감 도구로서 AI 활용에는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AI를 '대체'가 아닌 '협업' 도구로 받아들이는 시각이다. AI는 배우를 대신해 연기하지 못하고 감독을 대신해 삶을 해석할 수도 없다. 다만 창작자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의 범위를 확장할 뿐이다.

한국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이유를 되돌아보자. '기생충'부터 '미나리'까지, 화려한 CG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공감과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이었다.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핵심인 '인간적 통찰'은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몫이다.

국내 영화계도 AI 기술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간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술적 실험보다는 영화적 완성도에, 기술 과시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다루는 멜로·드라마 장르에서는 AI보다 인간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관객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공명하는 인간적 이야기다. 관건은 AI가 제공하는 기술적 혁신과 인간 창작자의 예술적 통찰을 얼마나 균형 있게 결합하느냐다. 이 균형이 완성될 때 한국 영화는 전 세계 관객에게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pompo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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