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 못내는 李정부 실용외교
파이낸셜뉴스
2025.12.18 18:18
수정 : 2025.12.18 19:11기사원문
정상외교 보고, 에피소드로만 가득
국익 위해 딜 일궈낸 사례발표 없어
MOU는 후속조치 있을 때만 효과
상대방 상정 안건에만 반응하는
수동적인 외교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 강점영역 현안 의제 올려야
더 거슬러 가면 지난해 12월 계엄의 실패로 탄핵소추가 즉각 진행되었고, 당시 여당의 재집권은 거의 불가능했다. 정권교체를 염두에 두고 국정 운영의 정지작업 시간은 6개월 정도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외교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만의 의제 세팅을 하지 못한 데 있다. 우리의 국익이나 외교목표가 불분명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새 정부에 우리의 단기적 외교의제는 분명했다. 미국의 관세 문제, 중국과의 고위급 회담 재개, 한미일 협력 강화를 위한 한일 관계 발전 등과 같은 현안은 연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정상으로도 캐나다 주요 7개국(G7),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아세안(ASEAN),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20개국(G20) 등과 같은 정상회의가 이미 즐비했다. 최소한 이들 현안과 일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령, 글로벌 공급망 개편에서 우리의 위치(제조·생산)에 맞는 의제 선정과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이 원천기술, 서구(일본)가 소부장과 중간재를 독점하는 구조에서 우리는 이들이 대신할 제조와 생산 능력을 보유한다. 따라서 우리의 의제는 수월한 능력 발휘를 위한 기술이전 규제 완화와 소부장 및 중간재의 로열티 등의 인하가 되겠다. 그런데 우리는 관세 인하에 급급해 우리 스스로가 국방예산과 동맹 부담금을 선제적으로, 자발적으로 인상하는 자충수를 뒀다.
정부의 실용외교에서 실용주의가 상실된 이유를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의제가 없는 데서 볼 수 있다. 의제 의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상대방과의 합의 도출 기대는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실 대변인의 입에서 나오는 정상회담의 보고는 에피소드로만 충만했다. 미국에 선물한 신라 금관 모형과 받은 야구배트 선물, 독일 총리의 관심과 무관한 통일 질문, 중국 샤오미 전자제품에 백도어 칩의 유무 여부 등등. 수많은 정상회담에서 우리 국익을 위해 딜을 일궈낸 사례 발표는 거의 없었다. 공개된 회담 자료는 상견례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회담 내용이 대부분 '강화' '증대, 확대' '인식을 확인' '발전하기로' '나가기로' 등과 같은 우리의 바람만 가득했다. 의제의 사전 합의가 없었던 사실도 공동성명의 건수(3건)가 방증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수많은 양해각서(MOU) 체결을 성과로 대신할 수 있겠다. 후속 조치가 있을 때만 이들은 빛을 낸다. 문제는 우리 외교사가 이미 암시한다. 우리가 미국, 중국, 일본 이외엔 대통령 임기 동안 다른 나라 정상과 거의 재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 MOU가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오늘날의 복합적인 세상에서 실용외교는 바람직한 노선이자 방향이다. 복합세계에서 특정 영역의 현안을 그 영역 내의 현안으로 해결할 순 없다. 많은 현안들이 타 영역과도 연계된 상황 때문이다. 따라서 영역을 넘나들며 우리의 강점 영역의 현안으로 상대방의 약한 영역의 현안을 공략해야 승산이 있다. 성공 여부는 시류의 흐름, 상대방이 원하는 것, 현안 관련국과의 구조적 관계 등을 다차원적으로 꿰뚫고 전략적 사고 발휘 능력의 보유에 따라 판가름 난다. 실용외교의 성공 전제는 우리만의 의제 세팅능력이다. 상대방이 상정한 안건에 반응하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도적인 어젠다 세팅을 위해선 우리 국익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의제 관철을 위한 우리 외교적 노력은 반드시 연속성과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실용주의에 대척하는 일회적 전시성 외교를 기피해야 하는 이유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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