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 근무 중 사망했는데 '산재 불인정'…질병판정위 "재해자 왜 안 왔나" 황당

[파이낸셜뉴스] 12년 동안 서울 시내 버스기사로 일해 온 60대 남성이 근무 도중 쓰러져 숨졌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스 운행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 옮겨졌지만 숨져

버스기사의 딸 A씨는 19일 JTBC '사건반장'을 통해 60대 중반의 아버지가 지난해 11월 26일 오후 5시 30분쯤 시내버스 운행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고 밝혔다.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A씨가 공개한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엔 승객들과 구급대원들이 기사 보호용 안전문을 열려고 애쓰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안전문은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구조로, 버튼은 버스기사만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승객분들이 다 와서 (안전)문을 열려도 해도 안 열렸고, 나중에 구급대원분들이 오셔서도 못 열어서 계기판 쪽에 올라가서 막 아빠를 들어서 옮기려도 했는데도 못 들어서 시간이 좀 많이 지체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A씨의 아버지는 쓰러진 이후 안전문 밖으로 구조되기까지 7분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술담배 안하고, 기저질환 없었다는 가족

A씨 아버지는 해당 버스회사에서 12년 동안 근무,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년 건강검진에서도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고 심장과 혈관 질환 가족력도, 기저질환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아버지가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가셨다며 업무상 재해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아버지의 업무가 오전조·오후조 교대제로 이뤄졌고, 주말에도 불규칙한 추가 근무가 이어지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담이 됐다고 주장했다.

산재 여부 판단하는 위원들 "왜 당사자가 안왔냐"

그런데 산재 여부 판단 과정에서 A씨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A씨는 "질병판정위원회 마지막 산재 승인 여부가 나기 전 제가 노무사와 함께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있었다"며 "한 남자 위원이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재해자 본인이 안 오고 따님이 여길 왔냐'고 얘길 하더라. 너무 화가 났다"고 털어놨다.

고인의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해야 할 위원이 서류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왜 당사자가 안 왔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후 결과가 나왔지만, 산업재해는 인정되지 않았다.

운행 중간중간에 있는 대기시간을 업무시간으로 보지 않고 "52시간 넘게 일한 적 한 번도 없다"고 판단한 것. 또 "12주간 급격한 근무시간, 업무 환경 변화가 없어 과중한 업무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유족 측은 "운행 사이 대기시간에도 주유, 요금함 배치 등 분명히 업무하는 만큼 제외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십수년간 시내버스를 몰며 불규칙한 근무시간대에 일해왔기 때문에 쌓여온 건강상 부담이 터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 고용부에 재심사 요청

유족은 현재 고용노동부에 재심사 요청을 한 상태다.

A씨는 "아버지가 십수년간 성실하게 일했는데, 운전석에 앉은 채 쓰러져 숨졌는데도 산재가 아니라니까 아버지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e-mail] 안가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