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현지화 속도내는 동남아, 韓대기업에 "우리 부품 써라"

파이낸셜뉴스       2025.12.21 18:06   수정 : 2025.12.21 18:16기사원문
베트남, 삼성에 "현지화율 60%로"
자국 기업 공급망 편입 압박나서
인니는 현지생산 부품 사용의무화
동남아 진출 韓기업들 부담 커져
"공급망 전략 완전히 다시 점검"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2030년까지 현지화율 6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베트남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함께 약속한 사안이며, 베트남 기업들에는 역사적인 기회가 될 것입니다."

베트남 정부 산하 한 협회의 고위 관계자가 최근 공개석상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베트남 내에서 생산되는 제품 사용을 확대하고 수천 개의 베트남 현지 협력사를 오는 2030년까지 새롭게 공급망에 편입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노이 현지에서는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삼성전자 외에도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에 대한 현지 공급망 확대에 대한 압박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주요 생산기지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산업 현지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글로벌 공급망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정책 드라이브를 본격화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국가들은 최근 △인센티브 정책 △인증 정책 △조달 규칙 등을 제정·운영하면서 '현지에서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쓰는 기업'이 유리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진출 지역 내 기업의 제품을 활용하라는 것으로 현지화 전략 강화에 나선 것이다. 이들 지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공급망 전략을 완전히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지화 기조에…진출 기업들 "부담"

21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가 강조하는 현지화 기조는 최근 정책 전반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노이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정부와 산하 기관의 현지화 강화 기조 메시지가 분명해진 만큼 이를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우선 최근 개정된 첨단기술법만 봐도 그렇다. 당초 초안에는 '현지 부품 사용률'과 '현지 기업 지분율' 등 현지화율을 따져 진출기업 인센티브를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됐었다. 그동안 하노이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에게 주어지던 인센티브 방식이 현지화율을 따져 이에 미달할 경우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어서 국내 기업을 비롯한 외국투자기업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다행스럽게도 초기 논의되던 여러 우려 사항들이 최종적으로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베트남 현지 공급망이 자리를 잡아가면 정부가 언제든지 시행령 등으로 다시 법제화 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LG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다년간 검증된 글로벌 공급망과, 함께 동반 진출한 한국 협력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생산 체제를 운영해 왔다. 품질 안정성, 납기 관리, 정보 보안, 환경·노동 기준 등 본사 차원의 컴플라이언스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만큼, 현지 협력사 편입은 장기간의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변화…"현지화율 높여라"

베트남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늘 공식 석상에 서면 "제조업 분야가 양적 성장에서 이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전자산업 수출액은 2010년 200억달러(약 29조62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수준이었지만, 2024년에는 6배가 넘는 1260억달러(약 186조6060억원)를 넘어서며 베트남 최대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이처럼 크게 성장했지만 전자산업 수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한 한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의 베트남 현지화율은 35~38%에 머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인니, 현지 생산 부품 의무 사용 법제화

이같은 산업 현지화 흐름은 베트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역시 자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국산부품의무화정책(TKDN)을 핵심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자·자동차·에너지·인프라 등 주요 산업에서 TKDN을 시장 접근과 공공 조달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는 국가 산업 전략인 '메이킹 인도네시아 4.0'의 실행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단순 조립을 넘어 부품·공정·기술 단계에서의 현지 기여를 요구하는 구조다. 외국계 기업의 생산 활동을 자국 산업 생태계 강화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수비안토 프라보워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관계자는 "애플도 TKDN 비율을 못 맞춰 아이폰16 출시를 보류하기도 할 정도로 글로벌 첨단기술 기업들 TKDN 비율을 맞추기에 고전을 겪고 있다"면서 "새롭게 인도네시아 진출을 계획 중인 기업들에게는 사업 자체가 지연될 수 있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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