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사랑, 호르몬으로 되살릴 수 있을까?
파이낸셜뉴스
2026.01.03 07:00
수정 : 2026.01.03 07: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옥시토신이 서로에게 좀 더 집중하게 하고, 공감능력을 높이고, 눈 맞춤 횟수를 늘리고, 대화 도중 서로를 공격하는 언행을 덜 하게 만든다는 여러 연구결과를 볼 때 이 호르몬을 잘 활용하면 무너져가는 관계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과학자와 의학자가 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결과는 뚜렷하지 않다. 경우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다.
2009년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 심리학 팀이 진행한 연구에서 옥시토신을 흡입하고 머니 게임을 한 사람들은 플라시보를 흡입한 사람들보다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상대방이 더 많은 돈을 잃으면 내심 고소하게 여겼다.
이것은 옥시토신이 공감능력을 높여준다는 기존의 연구결과와 상충한다. 옥시토신이 낯선 사람에 대한 공격성을 오히려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옥시토신을 흡입하고 게임에 임한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공격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 상대방의 신분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경계 수위가 조금 낮아졌다.
여성의 옥시토신 분비가 너무 높으면 오히려 불안이 높아지고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 연구팀이 연인과 심한 불화를 겪은 여성들의 옥시토신 수치를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일반 여성들의 수치보다 월등히 높았고 심한 불안과 원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남자들이 플라시보를 흡입했을 때보다 옥시토신을 흡입했을 때 어린시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더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던 남성은 어머니를 더 따뜻하게 묘사했고, 그렇지 못한 남성은 어머니를 더 매정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로 볼 때 옥시토신이 커플의 사랑을 되살리는 데에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커플 사이에 악감정이 이미 크게 자리잡았다면 오히려 그 감정을 강화할 수도 있다.
옥시토신이 사랑의 감정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미움, 고통의 기억 역시 강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옥시토신 분비량은 사람에 따라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옥시토신 보충은 역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커플의 관계 회복을 위해 옥시토신을 사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용량으로 사용할 때 좋은 효과를 내는지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유전적 요인이나 정신질환, 신경질환 등 옥시토신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모든 요인을 파악해야 하고 최적의 효과를 내는 타이밍, 용량, 심리상담 병행 여부 등에 대해서도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윤리적인 면도 고민해야 한다.
과연 옥시토신으로 감정을 조절하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윤리적일까? 옥시토신으로 인해 변화된 신경신호가 소모적인 관계, 굳이 지속할 필요가 없는 관계를 지속하도록 만든다면 두 사람을 더 오래 고통받게 하는 것이 된다. 또한 이것은 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통스러운 관계는 심각한 질병만큼이나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다.
호르몬이 우리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호르몬에 의존하여 감정을 의도적으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복잡한 관계의 문제를 호르몬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동이 건강하게 바뀌면 호르몬도 건강하게 바뀐다.
옥시토신 분비를 자연스럽게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일곱 가지 제안을 만나 보자.
첫째, 옥시토신은 피부가 피부에 맞닿는 감각신경의 자극을 통해 분비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포옹, 애무, 섹스야말로 옥시토신 분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특히 여성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옥시토신 분비가 절정에 이른다. 과학자들은 옥시토신이 분만 시 자궁수축에 관여하는 것과 섹스 시 오르가슴을 강화하는 것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일부 여성은 분만 도중 오르가슴과 비슷한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오르가슴이 힘겨운 임신과 출산의 대가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둘째, 자녀와의 포옹, 가족과 친밀하게 몸을 밀착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옥시토신 분비를 높인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은 엄마에게도 아기에도 굉장한 옥시토신 회로 자극 효과가 있다.
셋째, 반려동물과 몸을 맞대고 끌어안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좋은 효과가 있다.
반려동물의 사진을 바라볼 때 주인의 옥시토신 보상회로가 다른 동물의 사진을 볼 때보다 더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옥시토신을 흡입한 개들은 주인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늑대는 인간 조련사와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데 이는 옥시토신을 흡입시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늑대에게는 옥시토신 수용체가 부족하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넷째, 마사지를 받는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병원 피부과 팀이 진행한 연구에서 15분간 등마사지를 받은 65명의 그룹은 그냥 휴식을 취한 30명의 그룹에 비해 혈중 옥시토신 수치가 상승하고 부신피질자극호르몬과 산화질소, 베타엔도르핀의 수치는 감소했다. 몇 년 후 비슷하게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 이번에는 마사지를 한 사람의 옥시토신 수치도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플끼리 서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결혼생활의 갈등을 완화해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섯째,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마음 가득 행복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공명영상으로 음악을 듣는 뇌를 촬영하면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에피네프린 등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합창을 하면 이러한 행복감이 더욱 극대화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옥시토신과의 관련성은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다.
여섯째,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한다.
옥시토신은 옥시토신 유전자가 여러 번의 가수분해를 하면서 생성되는데 마지막 가수분해에 비타민C가 필요하다. 자궁, 고환, 안구, 부신, 태반, 흉선, 췌장 등 옥시토신이나 옥시토신 전구체가 발견되는 조직에서는 반드시 비타민C도 발견된다.
일곱째,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한다.
친구와 만나서 수다 떨기,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맛있게 먹기, 요가, 춤, 등산, 낚시 등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면 옥시토신 분비가 상승한다. 옥시토신과 관련한 모든 과학문헌은 인간의 행복은 사회적 성공이나 부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삶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