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간의 창의성 넘어설 수 없어

파이낸셜뉴스       2025.12.22 18:34   수정 : 2025.12.22 18:33기사원문



인간은 늘 도구나 기계를 만들고 활용해 왔다. 1500년경 나침반과 컴퍼스 그리고 세계지도가 정밀해져서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18세기에는 방적기계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을 이루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F 베이컨의 주장처럼, 근대 인간은 신의 영역으로만 알았던 자연을 탐구하고 지배하여 세계의 중심에 섰다. B 러셀이 근대를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시대로 파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근대는 휴머니즘의 시대였다.

빅데이터를 학습한 딥러닝, 거대언어모델을 장착한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근대와 다른 시대가 열린다. AI 챗봇을 사용해 보면, 방대한 정보와 데이터 추론능력에 자주 놀란다. AI가 인간의 사유에 파고들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인간과 기계 간의 경계도 흔들리고, 이를 둘러싼 논의가 철학에서도 이어진다.

R 브라이도티는 우리 시대의 인간을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른다. 그는 과학 발전이 정점을 향하는 시대에 인간은 로봇공학과 같은 기술시스템,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 그리고 이와 결탁한 자본이 서로 얽혀 작동하는 네트워크 안에 공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대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연을 지배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였다면, 포스트휴먼은 기계를 포함한 다양한 장치들이 만든 네트워크 안에 공생하는 하나의 연결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AI가 의료와 생명공학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까지 파고들어 삶의 일부가 된 시대가 되었으니, 인간은 이런 시대 흐름을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기계의 일부가 되고 기계에 종속되어 살아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AI 성능이 발전해도 인간의 이성적 사유와 기계의 수치적 판단은 다르다. 기계와 달리 인간은 존재의 지평 위에서 주변의 다양한 대상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인간의 인식은 맥락과 지향적 행위 속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사과를 볼 때 배고픈 사람은 먹을 것으로, 예술가는 형태와 색깔로, 물리학자는 낙하법칙과 관련하여 인식한다. 현상학자 E 훗설이 생활세계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자연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인간은 고유의 삶을 살아가고, 자연과학이 이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지향성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가치를 판단하고 의미를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초지능에 도달하더라도 AI는 생활세계적 의미 형성을 수행할 수 없다. AI는 미리 입력된 계산 틀과 데이터를 통해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AI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기술과학 네트워크 안에서 인간은 인식과 기억 그리고 판단능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인간 고유의 삶과 존재방식도 유지되며, 또 그래야 할 것이다.

다만 인간 외적인 장치들(AI, 기계, 자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인간이 해결할 과제로 남는다. 러셀이 과학적 이성을 옹호하면서도 윤리와 통제가 결여된 지배를 비판한 이유, 브라이도티가 자본의 지배를 경계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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