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단서 혹은 과대포장?…3천쪽 통일교 내부문건 살펴보니

연합뉴스       2025.12.25 09:37   수정 : 2025.12.25 09:37기사원문
6년간 한학자에 '특별보고'…전재수·임종성·김규환 등 언급 "내용 반복·오류" 주장도…신빙성 의문에 경찰 물증 확보 주력

로비 단서 혹은 과대포장?…3천쪽 통일교 내부문건 살펴보니

6년간 한학자에 '특별보고'…전재수·임종성·김규환 등 언급

"내용 반복·오류" 주장도…신빙성 의문에 경찰 물증 확보 주력

적막한 가평 통일교 본부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동환 이의진 최원정 기자 = 경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3천여쪽의 통일교 내부 문건이 '통일교 금품 게이트'의 핵심 단서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TM(True Mother·참어머니) 특별보고' 문건으로, 금품 수수 의혹을 촉발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 통일교 간부들이 한학자 총재에게 보고하는 형식이다.

2017년 8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원고지 기준 1만8천360장에 달하는 분량이다.

한 총재는 통일교 내부에서 '참어머니'로 불린다. 그에 대한 보고서에 정치권 인사와 얽힌 각종 로비 정황이 담겨있다고 경찰은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금품 수수 의혹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하며 해당 문건이 한 총재에 '충성 경쟁'을 벌이기 위해 부풀려진 내부 문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출석하는 전재수 전 장관 (출처=연합뉴스)


◇ 전재수 7번, 임종성 19번, 김규환 29번 언급…한학자 측 "오류 많아"

25일 연합뉴스가 TM 문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문재인·윤석열 정권을 넘나드는 시기에 여러 정치인 이름이 문건에 거론됐다.

2018∼2020년 무렵 통일교 측으로부터 수천만원의 현금 및 명품 시계 등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 등 3명이 대표적이다.

문건에서 '전재수'는 7차례, '임종성'은 19차례, '김규환'은 29차례 언급됐다.

이들은 전부 금품 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문건의 신빙성, 나아가 실제 한 총재에 보고됐는지 여부 등도 불분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입장이다.

한 총재 측 변호인도 지난 19일 법정에서 "특별보고 내용이 반복되거나 오류가 많다"며 "특별보고대로 한 총재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부 문건인 만큼 노골적인 표현도 상당수다. 2018년 5월 17일에 '전재수'가 처음 등장하는데 다른 민주당 인사 4명의 이름과 함께 거론된다. 특정 인사에게는 "문재인 대통령 심복 중 심복", "선거 100% 당선" 등 주관적 평가를 곁들였다.

"얼마 전 천정궁에 방문한 전재수 의원도 축사를 하고", "우리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2018년 9월 10일) 등 보고도 나온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1부속실장과 함께 만나기로 했다"(2019년 1월 11일)는 내용과 함께 전 전 장관으로 추정되는 '전 의원'을 거론하기도 한다.

사실관계 여부와 별개로 통일교가 전 전 장관을 당시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는 통로로 인식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윤영호 전 본부장은) 과거에도 현재도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라며 통일교 접촉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2019년 1월 7일 오후 2시에는 'TM 일정:전재수 국회의원'이라고 보고된 부분도 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전 전 장관과 한 총재 간 접촉 여부를 추적하고 있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천정궁 방문 기록, 회계자료 등도 분석하고 있다.

전 전 장관은 지난 19일 경찰에 출석하면서 "통일교로부터 그 어떤 불법적인 금품수수가 결단코 없었다"고 강조했다.

윤 전 본부장도 로비 의혹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 가운데 경찰은 로비 정황을 뒷받침할 물증을 찾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통일교 한학자 총재(왼쪽)와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출처=연합뉴스)


◇ 정치인이 로비 창구?…"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과대포장" 반박

"존귀하옵신 천지인 참부모님께 임종성 의원 교육에 대해 보고 올립니다."

통일교의 정치권 인사 로비 창구로 지목된 송광석 당시 천주평화연합(UPF) 회장은 2017년 10월 5일 임 전 의원을 언급하며 보고를 시작했다.

송씨는 2018∼2020년 통일교가 설립한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 회장을 맡으며 임 전 의원과 접촉을 이어갔다. 임 전 의원은 IAPP 한국 공동의장도 맡았다.

송씨는 2017년 10월 대만에서 임 전 의원을 만났다고 언급하며 "참부모님의 활동 소개와 비전을 교육받는 시간을 가졌다"고 보고했다. 또 "임 의원이 국토건설교통위 소속이라 천원단지(천원궁) 건설에 힘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임 전 의원 측은 대만에서 국회의원 교류 행사에 참석한 것은 맞지만, 통일교 교리 교육은 없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교가 임 전 의원을 국토교통부와의 연결고리로 인식한 대목은 또 있다.

2017년 11월 한일 해저터널을 홍보하던 통일교 산하 '세계평화터널재단'을 '세계평화도로재단'으로 명칭 변경하는 과정에서 "임종성 의원의 협조를 받아 어제 승인을 받았다"는 언급이 대표적이다.

당초 명칭 승인권을 갖고 있던 국토부는 재단 성격이 달라졌다고 판단해 명칭 변경을 불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10월에는 임 전 의원이 통일교의 키르기스스탄 수자원 사업에 도움을 줬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와 관련해 임 전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회의원으로서 수자원공사의 주력 사업을 도와줬을 뿐"이라며 "(통일교 관계자들이)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과대 포장'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IAPP 한국 공동의장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국회의원 연맹이라는 다른 의원의 권유를 받고 가입했다"며 "의장을 맡은 사실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김규환 전 의원은 문건에서 통일교를 적극 홍보하는 정치인으로 주로 묘사됐다.

"김 의원은 어제 체육관을 교구장과 함께 일곱바퀴를 돌고 오늘은 모두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공적인 입장에서도 배짱이 있고 담력 있게 참어머님을 간증하는 국회의원" 등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앞서 김 전 의원은 "통일교로부터 불법적인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윤영호라는 사람과는 전화 한 통도 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 통일교 서울본부 압수수색 (출처=연합뉴스)


◇ 한학자 "내 품으로 대통령이 돌아와"…노골적 尹 언급에 검찰 인사까지

문건에서는 '윤석열'도 29차례 언급된다. 20대 대선 당시 통일교와 국민의힘의 유착 의혹은 특검 수사를 거쳐 이미 1심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

한 일본 통일교 핵심 관계자는 2021년 11월 서신 보고를 통해 "한미일 3개국의 일체화 촉진에 있어 역시 이재명 후보보다 윤석열 후보가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 뽑히는 게 하늘의 뜻이 아닌가 통감하는 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영호 전 본부장이 윤 전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씨'라고 추측하면서 "이것도 뭔가 섭리적인 운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22년 5월에는 한 총재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두고 "내 품으로 대통령 및 대통령부가 돌아왔다"고 발언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윤 전 대통령 취임 당일에는 천정궁 상공과 국회 상공에 무지개가 떴다면서 한 총재가 "대단히 좋은 징조다"라고 평가한 부분도 있다.

2022년 7월 보고에는 "결국 하늘부모님, 참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면 어떠한 대통령도 비참한 운명의 말로를 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참부모님과 잘 연결되지 않으면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발언이 한 총재 '말씀'으로 소개됐다.

검찰 인사가 언급되기도 했다.

2017년 8월 '센트럴시트'(시티의 오타로 추정) 소송 언급과 함께 "우리가 원했던 검사 1명이 동부지검으로 배치됐다. 8개월 동안 준비했던 과정"이라고 보고됐다.


통일교 측은 당시 교단과 재산 분쟁을 벌이던 한 총재의 셋째 아들 문현진씨를 서울동부지검에 횡령 등 혐의로 고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부지의 통일교 지분을 임의로 처분했다는 주장이었다.

한 총재와 문씨는 교단 지도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dh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