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나타났다" 경고음 커지는 사모대출
파이낸셜뉴스
2025.12.28 18:26
수정 : 2025.12.28 18:25기사원문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2조달러 규모
은행 대출에 비해 자금조달 조건 유연
거품론 불거진 AI업종에 몰리는 상황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닮아
"금융위기 뇌관" 월가 거물들도 경계
"이런 말을 하면 안 될 수도 있지만,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면 아마 더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번 사안(Tricolor, First Brands 파산)에 대해서는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
"이 사례들이 개별적(idiosyncratic) 사건인가, 아니면 이른바 '탄광 속 카나리아(canary in the coal mine)'인가. 다시 말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알려주는 신호인가. 저는 여전히 매우 열려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
"비은행 대출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국가들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은행권에서 비은행 금융기관(NBFI)으로의 자금 이동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바퀴벌레가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수년간 급격하게 늘어난 글로벌 사모대출이 금융 시스템을 시작으로 세계 경기를 위축시킬 것인가, 아니면 기우에 불과한가. 모든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고 이를 지켜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에 대규모 자금이 투자되면서 AI 거품론과 맞물려 관리·감독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자금이 기업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일부 사례를 전체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또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지속되는 한 이러한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모대출, 왜 '은행 밖의 대출'인가
일반적으로 사모대출(Private Credit)은 공개시장(public markets)이나 전통 은행을 통하지 않고 비은행 사모펀드 또는 대체투자 기관이 기업 등에 직접 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은행과 같은 전통적 금융기관이 아닌 자산운용사나 전문 투자기관이 투자자(주로 연기금·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 등에 직접 대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직접 대출'이다. 중견기업이나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AI 인프라 투자에도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2024년 말 글로벌 사모대출 규모는 2조 달러(약 3000조원)를 상회한다. 미국의 사모대출 규모는 2010년 이후 연평균 20% 이상 증가했으며 지난해 말 기준 1조7000억 달러를 웃돌고 있다. 2028년에는 3조 달러(미국)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신용 시장에서는 이미 하이일드채(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레버리지론(투자부적격 기업 대출) 규모를 넘어섰다.
■고금리 시대가 만든 대체투자
사모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은행 규제 강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는 대폭 강화됐다. 고위험 대출 상품에 과도하게 투자한 것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실물경기 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고위험 대출 제한은 사모대출 시장 성장으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사모대출은 높은 기준금리와 변동금리(floating rate) 구조라는 두 가지 이점이 결합해 전통 채권시장 대안을 찾던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변동금리 대출에 투자하는 사모대출 펀드에게 엄청난 이점을 제공했다"며 "이는 투자자들에게 공모 채권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준다"고 전했다.
맥쿼리 캐피털의 글로벌 금융 스폰서 책임자인 톰 앰스터는 "사모대출의 인기는 시장이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사모대출은 공공시장이 중견기업 대출을 축소하면서 발생한 공백을 메우는 중요하고 영구적인 해결책이 됐다"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왜 사모대출을 택하나
기업들은 은행보다 조달 조건이 유연한 사모대출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모대출은 대출 실행 기간이 은행에 비해 상당히 짧다. 은행 대출은 6~8주 이상 소요되는 반면, 사모대출은 빠르면 2주 내 자금 집행이 이뤄진다.
기업들의 또 다른 자금조달 창구였던 기업공개(IPO)를 꺼리는 현상도 시장 성장을 촉진했다. 투자 그룹 메케타 캐피털(Meketa Capital)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 수는 1996년 8000개로 정점을 찍은 뒤 지금은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규제 압력이 커지고 사모 시장 기회가 확대되면서 IPO 매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AI 투자도 한몫했다. AI 칩,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 수요가 폭발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비공개 구조의 자금조달(사모펀드 및 사모대출)을 선호했다. 모건스탠리는 사모대출이 2028년까지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1조5000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을 공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UBS는 "이러한 대출은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하지만, 시장 혼란 시 거래가 어려워지고 잠재적으로 금융시장 스트레스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의 '첫 경고음'인가
이렇게 성장하던 사모대출 시장에 경고음을 울린 것은 트라이컬러와 퍼스트브랜드그룹의 파산이다. 트라이컬러는 텍사스주 댈러스에 본사를 둔 서브프라임 자동차대출 전문 회사다. 주로 히스패닉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중고차 판매 및 대출 사업을 해왔다. 이 회사는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해주고 이중 담보 등을 활용하다가 파산했다.
퍼스트브랜드그룹은 자동차 부품 제조·공급 회사로,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방식의 자금조달 구조가 문제가 됐다. 재고·매출채권·리스·외부 금융기관과의 복잡한 거래를 통해 자금을 운용한 것이 결국 유동성 리스크를 불렀다. 두 회사 파산은 사모대출 및 비은행 금융시장의 투명성 부족, 리스크 관리 취약성, 과도한 레버리지 구조에 대한 경고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두 사례 모두 불투명한 자산평가 시스템과 복잡한 증권화 구조로 인해 리스크가 전이된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의 부실 상황에 대한 정보가 공개시장보다 훨씬 불투명해 문제가 생겨도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가 늦다"고 지적했다.
■진짜 위험 신호는
위기의 전조라고 보는 시각에서는 정보의 불투명성 외에도 PIK(payment-in-kind) 구조를 근거로 제시한다. PIK는 이자를 원금에 합산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당장의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은 커진다. 사모대출 내 PIK 비중은 2021년 6.7%에서 2025년 10.7%로 증가했다. IMF는 PIK 차입자의 40% 이상이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사모대출 기업들의 신용등급 고평가도 문제다. 사모대출 투자자들이 소형·전문 신용평가사가 제공하는 등급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콜름 켈러허 UBS 회장은 최근 "미국 보험사들이 사모대출 자산의 높은 신용등급을 얻기 위해 평가 쇼핑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행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고평가와 유사하다는 비판도 있다.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역시 "비은행 금융기관들은 은행만큼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다"며 "사모대출 분야의 급성장이 이어지고 세계경제가 동시에 약해질 경우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행들도 사모대출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있다. 은행들은 기업대출 대신 사모대출 운용사에 대출을 제공하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IMF는 미국·유럽 은행들이 비은행 금융기관에 총 4조5000억 달러 대출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한다. 은행과 사모대출 기관이 경쟁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행 자금이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리스크가 불거질 경우 은행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의 엇갈린 시각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과도한 우려라고 평가한다. 마이크 켈리 FS 인베스트먼트 사장은 "두 회사의 갑작스러운 파산은 사모대출 시장에서 흔히 있는 사례"라며 이것이 사모대출 시장의 거품을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모대출이 미국 금융 구조의 재편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로완 아폴로 최고경영자도 최근 파산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해당 기업들의 불법적·부적절한 행위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나증권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연준의 금리 인하, 양적긴축(QT) 종료 등 정책적 완충 장치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단기적 신용경색은 억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prid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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