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미안해요" 배달 일로 생계 이어오던 10대, 선배 폭행에 '그만'

파이낸셜뉴스       2025.12.29 06:37   수정 : 2025.12.29 13:4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경북 안동에서 16세 A군이 한 살 터울 선배 B(17)군의 잔혹한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A군은 할머니와 함께 살며 배달 일로 생계를 이어 오던 조손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오토바이 강매하고 폭행·협박한 선배


2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구지검 안동지청은 지난 8월 17일 경북 안동시 안기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숨진 채 발견된 A군에게 여러 차례 폭행·협박·공갈·감금 등을 가한 혐의를 받는 B군을 지난달 21일 구속기소 했다.

B군은 지난 7월 중고로 70만 원에 산 125cc 오토바이를 A군에게 140만 원에 강매했다. 그러나 가진 돈이 70만 원밖에 없던 A군은 잔금을 치킨배달 아르바이트 등으로 벌어 갚았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 마다 B군은 연체료를 명목으로 추가 금전을 요구했고, “제때 안 갚으면 죽인다”라며 협박, 폭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A군은 숨지기 이틀 전인 8월 17일 누군가의 신고로 무면허 운전이 적발돼 경찰에 유일한 벌이 수단이었던 오토바이를 압류당했다. 이에 B군에게 돈을 가져다줄 방법이 없어진 A군은 B군의 보복이 두려워 결국 8월 19일 새벽,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에게 미안하다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A군이 숨진 날 새벽 B군은 경찰서에 압류돼 보관 중이던 오토바이를 찾아갔고, 다른 이에게 170만 원을 받고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B군은 오토바이를 A군에게 판매했지만, 명의를 이전해 주지 않아 B군이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변사 처리한 경찰, 친구들 증언 나오자 재수사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A군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단순 변사로 판단했지만, 장례식장에서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친구 9명의 증언이 나오면서 재수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B군의 휴대전화 포렌식과 목격자 진술을 통해 혐의를 입증했으며,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이례적으로 소년범인 B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학교라는 보호 체계 밖의 위기 청소년들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결과"라며 "제2의 비극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재점검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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