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장영실'과 '뮤지컬'
파이낸셜뉴스
2025.12.29 18:31
수정 : 2025.12.29 19:33기사원문
'대규모 스케일과 시각적인 완성도'는 뮤지컬 제작사 EMK의 특성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한복 입은 남자'는 그런 점에서 EMK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조선에서부터 피렌체로의 이동, 근대와 현대의 교차 등은 무대를 경탄 속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의 천 석이 넘는 관객들을 시종 압도하며, 묵직한 중량감으로 객석을 사정없이 밀어붙인다.
따라서 공연은 장영실의 일대기를 세종과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삼아 재구성하면서, 당대의 신분제 사회 구조에 저항하는 '깨어 있는 존재'로 그려낸다. 이처럼 형상화된 장영실은 별을 관측하고 하늘을 날기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로 표현된다. 특히 '비차'(글라이더, 무동력 비행기) 넘버와 마지막에 배치된 '비차 서프라이즈'는 그야말로 장영실의 노래다.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유와 꿈의 이미지가 장영실에게 입혀진다.
꿈꾸는 존재로서의 장영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거꾸로 그를 억압하는 조건을 묘사할 필요가 있다. '한복 입은 남자'는 특히 궁중의 장면들이 눈부시게 고고하며 권위적이다. 비현실적인 색감의 치렁치렁한 한복을 입은 신하들은 대규모의 앙상블 군무를 보여준다. 장영실을 보호하며 고뇌하는 세종을 둔 채 한꺼번에 거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무용이 기막히며, 그 가운데서 세종은 한숨을 토해내듯, 결단하는 '너만의 별에'를 부른다.
다만 공연은 소설의 모든 설정에 너무 욕심을 낸 듯하다. 이야기 몇몇 줄기에서 주제가 변주되거나 강화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거나 반복처럼 다가온다. 차라리 이야기 줄기 몇몇의 과감한 가지치기를 시도했다면 어떠했을까.
'한복 입은 남자'는 무엇보다 뮤지컬 장르가 상상과 환상 세계를 다룰 때의 장점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대로 호출된 상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자 꿈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억압된 현실을 넘으려는 '장영실'이며 그렇게 무대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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