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율 난방 '히트펌프'의 역설…난방 전기화의 비용은 누가 내나"
파이낸셜뉴스
2026.01.17 06:00
수정 : 2026.01.17 13:39기사원문
기후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 온실가스 518만톤 감축목표
전력공급 안정성 취약한 겨울철 추가 수요 발생 우려
히트펌프 사용으로 LNG발전 늘어나는 모순
가정 부담 줄이려면 누진제 개편 필요
누진제 개편하면 한전 재정 부담 커지는 딜레마 발생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정부가 히트펌프를 건물·난방 부문의 핵심 탄소중립 수단으로 내세우며 보급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효율 전기난방 기술인 히트펌프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건물 부문 배출을 빠르게 감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한국의 전력 시스템과 요금 구조, 겨울 피크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다 재생에너지 편입 시도 등이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겨울철 전력수요에 부담주는 히트펌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이후 열린 브리핑에서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히트펌프'란 주변(공기, 땅, 물 등)의 열을 끌어와 난방이나 냉방에 사용하는 장치로, 연료를 태우지 않아 이산화탄소의 직접적인 배출이 전혀 없어 화석연료 난방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장치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518만톤을 감축하는 것이 목표로, 도시가스 미보급 지역과 공공·에너지다소비 시설을 중심으로 설치비 보조와 금융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전기요금·건축 기준·ZEB 인증 제도를 손질해 보급 여건을 개선하는 동시에 화석연료 보조금은 단계적으로 축소하며 히트펌프 중심의 난방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히트펌프를 둘러싼 정책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고효율’이다. 전기 1을 넣어 3~4의 열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히트펌프를 구동하는 전기의 출처와 시간대이다.
한국의 겨울철의 전력수요는 구조적으로 산업용 전력은 그대로 유지되고, 가정·상업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일조량 감소로 태양광 발전량은 줄어든다. 다른 계절에 비해 전력 공급 안정성 부분이 취약한 시기다. 히트펌프는 겨울철에 가장 많이 가동된다. 즉 전력 수요가 가장 높고 공급 여력이 가장 낮은 시간대에 추가 수요를 만드는 설비라는 얘기다. 히트펌프의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사실이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한국은 겨울철 전력 피크 대응의 마지막 수단으로 천연가스(LNG) 발전을 사용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모두 단기간 출력 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히트펌프 가동이 늘수록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겨울철 LNG 발전 가동률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을 위해 히트펌프를 사용하지만 화석연료인 LNG 발전소의 가동도 함께 늘어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히트펌프의 보급이 늘수록 '동시성 강화'라는 위험요소도 높아진다. 가스 보일러는 가정마다 사용하면서 연료를 분산해 태운다. 반면 히트펌프는 모든 수요가 전력망으로 집결한다. 히프펌프의 보급이 늘수록 출근·귀가·야간 등의 시간에 사람들이 동시에 켜는 일이 빈번해지거나, 한파 등이 발생하면 동시에 효율이 떨어진다. 또 주거밀집지 등 같은 계통 구간에 부하가 몰릴 수 있게 된다.
지역난방·열병합 체계과의 역작용 우려
히트펌프 보급 정책이 가장 심각하게 충돌하는 지점 중 하나는 지역난방·열병합(CHP) 체계다. 히트펌프는 개별 건물 단위에서는 효율적인 설비일 수 있지만, 열과 전기를 함께 보는 시스템 관점에서는 오히려 전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열병합과 히트펌프간 기술 간 우열이 아니라 역할 분담의 붕괴가 우려된다.
지역난방의 핵심은 열병합발전이다. 열병합은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폐열을 회수해 난방에 활용함으로써, 연료를 두 번 쓰는 효과를 낸다. 전기만 생산하는 발전보다 총에너지 효율이 높고 겨울철 난방 수요를 흡수하면서 전력 피크를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수도권과 주요 신도시의 지역난방은 이런 구조 위에 설계돼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지역난방공사와 민간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열병합 설비는, 겨울철에 전력과 열을 동시에 떠받치는 기저 인프라다.
히트펌프가 지역난방을 대체하거나 잠식하기 시작하면, 열병합 시스템에는 연쇄 반응이 발생한다. 열병합은 열 수요가 있어야 전기 생산도 함께 최적화된다. 히트펌프로 난방 수요가 빠지면, 열병합은 열을 버리거나 전기 생산을 줄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역난방에서 빠진 열은 히트펌프가 전기로 대신 만든다. 즉, 열병합 발전소의 효율은 떨어지고, 히트펌프 때문에 추가 전력이 필요해진다. 앞서 언급된 '겨울철 LNG 발전 의존'이라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밖에 정부는 공기열·지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 범주로 적극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히트펌프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전기를 소비해 열을 이동시키는 장치다. 전력 믹스가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인 상황에서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은 통계상 감축 효과를 앞당겨 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실제 배출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요금체계 개편없는 전기화의 위험
히트펌프 정책은 ‘전기화=탈탄소’라는 단순한 공식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요금 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전기화는 곧바로 사회적 갈등으로 전환된다. 전기요금은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에너지 복지 △공기업 재정 △산업 경쟁력이 동시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선 히트펌프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전기요금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의 핵심은 누진제다. 누진제 구간을 벗어나게 되면 단가가 크게 올라가는 구조다. 정부와 한전은 가정용 전기요금과 관련해 봄, 가을 기본요금 체계 기간과 동·하계 누진제 완화 (12월~이듬해 2월, 7월~8월) 기간으로 나누고 있다. 누진제 완화기간은 여름철 폭염이나 겨울철 혹한으로 인한 에어컨, 전기 난방 사용 급증에 대비해 상위단계로 넘어가는 기준점을 높인 시점이다.
히트펌프는 효율이 높아도 전기의 절대 사용량 자체가 크다. 겨울철에는 난방을 끄기 어렵고, 사용 패턴도 연속적이다. 결과적으로 히트펌프 사용 가구는 겨울철 누진 구간을 빠르게 넘어가고, 단가 상승을 고스란히 부담하며, 체감 요금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전기요금 체계를 조정할 수 있다. 난방용 전기에 별도 요금을 적용하거나, 지금의 겨울철 누진제를 좀 더 완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곧바로 한전 재정 문제로 이어진다. 겨울 난방용 전력을 싸게 공급하면, 판매 단가는 내려가고 겨울 피크 대응을 위한 발전·예비력 비용은 늘어난다. 이는 현재 200조가 넘는 천문학적 금액의 부채를 가진 한전에게 더 큰 부담을 씌우게 된다. 결국 누진제를 개편하면 공기업 재정 부담으로, 누진제를 유지하면 가계가 부담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기후부가 발표한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 방안'에는 '전기요금과 관련해 한전과 논의 중'이라는 한 줄만이 담겼다. 히트펌프 보급 정책이 어느 쪽의 부담도 명확히 설계하지 않은 채 출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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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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