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을 아세요?"..붉은 벽돌, 아치형 창문이 말을 걸어오는 연희동 그 커피집
파이낸셜뉴스
2026.01.18 08:00
수정 : 2026.01.18 08:00기사원문
[연희정음 '푸어링아웃 메라키' 이야기] 1980년대 김중업 후반기 건축 특징 담긴 '장석웅 주택' 쿠움, 건축주 제안으로 인수…복원 통해 옛 모습 살려 전시공간 구성하고 지하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 재구성 카페 '푸어링아웃 메라키'…커피 맛에 김중업 철학 담아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 거장 중 한 명인 김중업이 1984년 설계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장석웅 주택'은 그렇게 '김중업'의 후기 작업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 원, 그리고 원이 만드는 완만한 곡선, 곡선이 창출한 공간의 리듬감까지.
그리고 그 '원' 안에 카페가 있었다.
김중업의 미감을 담은 곳
기업가인 장석웅은 1980년대 건축가 김중업에게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3에 주택 건축을 의뢰했다.
김중업은 1950년대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3년여 일하며 조형의 원리와 인간 중심의 공간 개념을 배웠다. 귀국 후 그 가르침을 한국적 근대주의로 재해석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 중 '장석웅 주택'은 김중업의 후반 작업 특성을 모두 볼 수 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김다해 학예연구사는 "1980년대 김중업의 건축물엔 60, 70년대 없었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그리고 원"이라며 "계단은 중앙에 기둥이 박힌 듯 원을 그리며 올라가고 창문은 원형이거나 아치형이다. 벽돌 건물도 특징 중 하나"고 설명했다.
실제 장석웅 주택 속 원형 계단은 지하부터 3층까지 순환축을 만들며 올라간다. 반원형 거실은 '원'의 언어를 통해 가족이 모이고 흩어지는 걸 공간적으로 구현했다.
벽돌의 쓰임도 이색적이다. 지붕 위 삼각형 모양의 전돌(벽돌)은 입체감을 살렸고 외벽의 붉은 벽돌은 표준형 벽돌의 57㎜ 높이를 반으로 갈라 촘촘하게 쌓아 올렸다.
30여년간 주택으로 쓰이며 김중업의 유산 중 하나로 남던 이 집은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카페 등 상업용 공간으로 쓰이며 옛 모습이 훼손됐다. 벽돌은 손상됐고 원형 디테일은 새로운 마감재 아래에 묻혔다.
복원으로 되살아난 건축, 아니 '작품'
연희동 토박이인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는 '장석웅 주택'을 볼 때마다 옛 모습이 사라지는 데 조바심이 났다. 그는 연희동과 연남동에서 100여 채 이상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지역 재생을 선도하고 '연희동 카페 골목'을 조성했다. 그런 김종석 대표에게 '장석웅 주택'이란 건축 유산인 동시에 지역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주춧돌처럼 여겨졌다.
그는 "2011년부터 하자 보수를 통해 건축주인 장 회장님과 인연을 맺었다. 연희동 카페 골목을 만들 때도 든든한 후원자였다"며 "보수 요청이 오면 김중업 건축가의 예쁜 집을 볼 수 있다는데 신이 나서 달려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5년여 전 건축주가 김 대표에게 '인수'를 제안했다.
김종석 대표는 "'건축을 사랑하고 이 집을 사랑하니 지킬 수 있을 거 같다'며 건넨 제안이었다. 6개월 고민하고 인수인계의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2024년 새 건축주가 된 그는 '김중업의 원형을 최대한 되살린다'는 원칙 아래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장인처럼 하나, 하나 수작업했다.
김종석 대표는 "지붕 위 삼각 전돌과 입면 벽돌은 손상이 큰데 같은 걸 구할 수 없었다"며 "사각형 벽돌을 절단해 6000여장의 삼각 전돌을 만든 뒤 지붕 뒷면의 옛 벽돌을 앞으로 가져오고 뒤에 새로 만든 벽돌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1층의 스테인드글라스, 원형 계단은 옛 위치와 모습을 유지하면서 수리했다. 누수와 부식으로 훼손된 3층 반원형 적삼목 천장은 전면 해체 후 보강해 같은 형태로 재시공했다. 창호 역시 최대한 남겨두려고 했다. 1층 서쪽 옛 창은 남겨두고 이를 토대로 다른 창호들을 제작했다.
복원의 과정은 어려웠지만, 김중업 건축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만끽했다.
김종석 대표는 "건축 중 가장 어려운 게 복원인데 작업을 하면서 곡선과 벽체, 처마와 굴뚝 등의 끝처리에서 김중업이 집요하게 시공했다는 걸 느꼈다"며 "어떻게 이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기분좋게 말했다.
아름다움은 다른 이들에게도 통했다.
김종석 대표는 "이곳에 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김중업 건축물이란 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복원이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김종석 대표는 내내 '건물'이라는 말 대신 '작품'이라는 표현을 썼다. 복원의 과정을 거친 이 작품은 2025년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연희'정음(正音)'이라는 새 이름도 갖게 됐다.
이름을 얻고 목적이 생겼다
김종석 대표는 김중업의 건축을 지키면서 '연희정음'의 이름에 걸맞은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문화공간이었다. 거실과 안방이 있던 1층, 두 딸의 방이 있던 2층은 벽체를 없애 문화복합 공간으로 꾸미고 아들의 방이던 3층은 전시·세미나·공연 등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라이브홀로 꾸몄다.
현재 이 공간에는 '르코르뷔지에 × 김중업 건축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6일 개관전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이다.
새로운 공간도 더했다. 건물 외부 유리 파사드다. 높이 6m, 15평 크기의 공간에선 전시, 공연 등 다양하게 쓰일 예정이다.
김종석 대표는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며 가려지지 않도록 유리로 만들었다. 올해만 여러 건의 전시, 행사가 예약된 상황"이라고 했다.
사방이 막혀 내부로 접근하던 지하 공간도 변화를 줬다. 빛이 들어가도록 땅을 파내려 지면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성큰(Sunken) 공간을 만든 뒤 출입문을 만들었다. 외부로 노출된 지하는 지역 사랑방이자 커뮤니티 룸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마침표처럼 찍힌 카페
지하는 오래된 건축에 새로움을 덧입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문구와 생활소품을 다루는 편집숍과 디자인 스튜디오가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1일 이 곳에 카페 ‘푸어링아웃 메라키’가 문을 열었다. 김종석 대표에게 연희정음 안 카페가 들어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희동 카페 거리를 만든 그는 "건축과 커피는 한 몸처럼 비슷하다. 예쁜 건물에 커피 한잔"이라며 "복원할 때 카페에 필요한 모든 환경을 만들었다. 카페 주인은 예산 걱정없이 콘셉트에 맞는 소품과 집기만 가져오면 충분했다"고 풀이했다.
김종석 대표의 눈에 연희정음에서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는 카페 '푸어링아웃'이 들어왔다.
김종석 대표는 "지역 소상공인, 그것도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푸어링아웃'은 커피에 대한 철학이 있는 곳이었다. 맛은 물론 손님을 대하는 자세에 변함이 없었다. 김중업의 건축 가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복원에 나서면서 3년전부터 찾아가 삼고초려하듯 섭외했다"고 말했다.
제안을 받은 푸어링아웃의 김승현 대표도 김중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승현 대표는 "오픈하기 2년 전부터 준비한 곳이다. 안양의 김중업건축박물관 등을 찾아가며 그 분의 건축 철학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덕분에 어두운 조명, 금속 가구들로 '차가운' 느낌을 주는 본점과 달리 연희정음의 매장은 말 그대로 원 안에 들어간 듯 했다. 성큰 공간에 뻗친 햇살을 매장까지 끌어왔다. 식물과 우드톤 소품은 따뜻함을 배가시켰다.
이름엔 '메라키(Meraki)’를 덧붙였다. 그리스어로 ‘영혼을 담아 정성을 쏟다’라는 뜻이다.
김승현 대표는 무대미술을 전공한 실력을 발휘해 가구며 소품도 직접 만들었다. 그의 작품인 12명이 둘러앉는 거대한 테이블은 모든 공간을 차지해도 답답하지 않았다. 사랑방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입소문이 더해지니 외지에서도 사람들이 찾았다.
오전 9시 영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산하던 공간은 어느새 사람들로 채워졌다. 중년의 자녀가 노년의 부모와 찾았고 감성 충만한 패션으로 치장한 젊은이들이 마주 앉았다. 외국인들도 힙한 곳을 놓치지 않았다.
연희동에 거주한다는 임다영씨(43)는 "부모님이 부산에서 올라 오셔서 이 곳을 찾았다"고 했고 맞은 편에 앉은 핀란드 관광객 안나씨는 "블로그를 보고 찾아왔다"고 맞받았다.
“커피는 행위를 담고 있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느끼는 모든 행위가 바로 공간 안에서 이뤄진다. ‘삶의 건축’이라는 김중업 선생님의 철학처럼."
김종석 대표의 말이다.
커피와 여유를 느끼는 다음 공간은, 또다른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사옥'에서 이제는 미술관이 된 그 곳의 카페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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