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의 정치
파이낸셜뉴스
2026.01.18 19:09
수정 : 2026.01.18 19:09기사원문
맛과 향이 육수에 배어든다. 퍽퍽했던 고기의 육질은 수분으로 가득 차 야들야들해진다. 조림이 맛있는 까닭은 자신의 공간을 비워두고 주변의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조림은 수용의 예술이다.
이 수용의 예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흑백요리사2' 최강록 셰프다. '조림핑' '연쇄 조림마'라는 갖가지 별칭이 붙었던 그는 수많은 조림 요리를 선보였다. 그 예술에 심사위원 두명이 모두 빠져들었다.
요리만 그렇겠는가. 나무는 물을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며 발전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더욱 '조림의 미덕'이 필요하다.
최근 계엄 사과 거부를 시작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제명을 둘러싸고 당내 인사들과 갈등을 빚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보인 일련의 모습은 조림과는 상반돼 보인다. 장 대표에게서는 덜어내는 모습만 보인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시사한 상황이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절윤(切尹)' 인사들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공격했다. 그럴수록 맛은 단순해진다. 순간은 강렬할지라도 혀에 짙은 고통만이 남지 않겠나.
국민의힘이라는 요리가 더욱 깊은 맛을 내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조려야 한다. 요리의 이름을 고치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국민의힘은 뒤늦게 조리기 시작했다. 김문수 대선 후보는 선거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뒤늦게 계엄에 대해 사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중도 보수'를 선언한 지 한참이 지나서다.
장 대표도 야당으로서 강력해지는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선 지선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더 많은 맛과 향을 수용하고 풍미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많은 재료들을 곁에 두고, 조림으로써 수용해야 한다. 장 대표는 고집을 버리고, 공간을 비움으로써 풍미를 내는, 삼투압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haeram@fnnews.com 이해람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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