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 실리 쫓던 동남아·인도… ‘줄타기 외교’ 변곡점 맞나
파이낸셜뉴스
2026.01.19 18:25
수정 : 2026.01.19 21:39기사원문
(4) 美 세계질서 재편에 ‘중간지대 흔들’
베트남, 美쪽으로 무게중심 이동
中과 경제적 연결있지만 ‘남중국해’ 대립
美 수출 의존 높아 관세·공급망 적극 대응
中과 선긋기하며 경제 파트너로 美 선택
말레이·인니, 아직은 中이 더 이익
말레이, 美 비판한 시진핑과 전략전 연대
인니, 中 자본이 제조업·자원개발 깊숙히
美 관세 직격탄 등 통상 압박 리스크 전망
인도, ‘미묘한 삼각관계’ 언제까지
美와 전통적 비동맹 불구 경제적 선택 불가피
트럼프, 러시아 원유 이슈로 추가관세 압박
中, 틈새 파고들지만 상호 관계 개선 미지수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그동안 남중국해 곳곳에서 갈등을 빚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게 '수퍼 파워' 지위를 위협받고 있는 미국은 동남아 각국들에게 "이제 더 이상 '줄타기 외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지고 있다.
동남아의 신흥 강국 베트남은 미국의 관세 압박과 중국의 대규모 투자 공세 사이에서 중국 의존도를 서서히 낮추며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일부 이슬람권 국가는 중국의 대규모 인프라·투자 제안에 오히려 미국보다 중국 쪽에 더 우호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 대안으로 떠오른 인구대국 인도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라는 공감대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선긋기가 더욱 분명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의 동남아 줄세우기 움직임에 국내 대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고 있어 이들 국가의 지정학적 선택이 한국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리스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이탈할 경우 미국에게 대규모 추가 관세를 얻어맞을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자유진영의 공급망에서 제외되는 엄청난 사태를 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 외교’ 끝?…美로 무게 추 쏠리는 베트남
베트남은 미국의 대규모 관세, 공급망 체제, 지정학적 안보 등의 문제를 빠르게 인식하고 이를 외교적 선택으로 옮기고 있다.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어느 진영에도 서지 않는다며 '대나무 외교'를 내세웠지만, 최근 외교·통상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베트남의 무게중심은 점차 미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베트남과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만 지정학적으로 남중국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근래에 역사적 갈등이 있었지만 베트남의 경제적 핵심 파트너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는 숫자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다. 2024년 기준 2809억 달러로 중국(1879억 달러)보다 무려 1000억 달러 가까이 많은 물량을 수출했다. 반면 수입은 중국이 3173억 달러로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은 251억 달러에 그쳤다. 베트남 입장에서 미국의 관세 폭탄이 너무도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더구나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서방 자유진영의 공급망 체인에서 배제될 있다는 것을 베트남 지도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미국 국방부·국무부 인도·태평양 전략을 담당했던 전현직 관료들은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에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여전히 크지만, 방위·기술·다국적 기업의 신뢰 측면에서 미국을 대체할 국가는 없다"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단기적으로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관리하겠지만, 제도와 안보 기반은 미국 주도 질서에 더 가깝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은 전체 수출에서 해외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안팎에 달한다. 기업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으로 균형추가 기울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의 애덤 새믄딘 이코노미스트는 한 외신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재차 끌어올릴 수 있는 여러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줄세우기에 관세가 주요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베트남 지도부도 같은 공산국임에도 중국과 분명하게 선을 긋기 시작했다.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보호주의와 일극주의를 비판하며 동남아 첫 순방지로 베트남을 선택했지만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여러 가지 현안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게 그 예다.
중국은 최근 베트남에 신규 투자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지만 베트남은 오히려 경제 현장 곳곳에서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이 환적 상품(제3국이 베트남을 거쳐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에 대한 관세를 40%로 높이자 베트남은 중국 기업의 '택갈이' 수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 또한 이같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동남아 지역 싱크탱크인 싱가포르의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중에 한 곳을 골라야 한다면 어떤 국가를 골라야 하냐'는 질문에 베트남 응답자의 73.5%가 미국을 선택했다.
■‘中의존’ 말레이·인니…"신뢰비용 치를 수 있어"
그러나 아세안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재선 이후 미국의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중국과의 경제·외교 협력에 더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같은 선택이 향후 미국의 통상 압박이라는 새로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몇 년간 미·중 사이에서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를 내왔다.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지난해 베트남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시진핑을 말그대로 격하게 끌어안았다. 미국의 보호무역과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시진핑의 주장에 말레이시아가 전략적 연대로 함께 하겠다고도 했다. 또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베네수엘라 지도자와 그의 아내에 대한 체포는 국제법 위반이고 주권 국가에 불법으로 무력을 사용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중국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말라카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 나라다. 유사시 중국을 묶어둘수도, 해상봉쇄를 해제할 수도 있는 전략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미국 수출 물량이 중국보다 많아 향후 통상압박 등에 직면할 경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말레이시아의 미국 수출액은 871억 달러, 중국 수출액은 825억 달러다.
인도네시아 역시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안보 영역에서는 미국과 함께 군사 훈련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신수도 누산타라 개발, 니켈·배터리 산업 등 인도네시아의 핵심 메가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인도네시아 제조업과 자원 개발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서방 자본을 크게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경제적 밀착은 실로 엄청나다.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2024년 기준 1277억 달러치를 수출했다. 반면 미국 수출액은 531억 달러로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중국에서의 수입액도 629억 달러로 미국의 114억 달러보다 5배 이상 많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미국의 압력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런 선택에는 분명한 리스크가 따를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차별적 관세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결속이 깊을수록 미국의 통상 압박 대상이 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공급망 우회 거점으로 의심되는 국가들에 대해 관세·비관세 장벽을 확대할 수 있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다. 이는 이들 국가가 향후 관세를 포함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말레이시아의 경우 첨단 산업 비중이 높아 향후 관세 충격이 현실화 될 경우 제조업과 외국인 투자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FT는 최근 보도를 통해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할수록 미국 중심 질서에서의 커다란 신뢰 비용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복잡한 상황 처한 인도는 어떤 선택
더 독해진 트럼프를 마주하는 인도의 속내는 정말 복잡하다. 인도는 지난 1950년부터 '비동맹 외교'를 선언하고 냉전 시대를 건너왔지만 또 다시 '신 냉전'이라는 부담스런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최근 중국을 대체할 공급기지로 떠올랐지만 인도는 트럼프가 짜는 국제 질서에 선뜻 편승하지 않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은 물론 러시아, 중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겹겹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가 처한 현실을 볼 때 선택지가 미국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인도 경제에 있어 1590억 달러에 달하는 최대 수출국인 반면 중국 수출액은 301억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입액은 중국이 1221억 달러로 가장 많다. 중국에서만 무역적자가 99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인도의 선택지는 미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인도를 다소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러시아 원유 구매를 끊고 미국 편에 명확하게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을 인도가 대고 있다"며 인도산 물품의 기본관세 25%에 추가로 25%를 얹어 무려 50%의 관세폭탄을 매기고 있다. 또 최근에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줄이지 않는다면 관세를 500% 부과하겠다"며 트럼프는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인도와 미국의 틈을 파고 들고 있다. 궁지에 몰린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해 8월 말 상하이협력기구회의 기간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을 만났다. 무려 7년만에 만난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인도-파키스탄 분쟁 때 파키스탄은 중국산 무기를 동원해 인도를 공격했고, 히말라야 갈완계곡에서 수만 명의 병력이 마주하고 지속적으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인도 내 유력 언론과 전문가들은 "인도는 미국과 함께 중국 억제라는 공동목표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며 "지금은 농업 등 무역협상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상황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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