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은 트럼프시대에 美의 핵심 기여자… 강대국 도약할 기회"

파이낸셜뉴스       2026.01.22 18:18   수정 : 2026.01.22 18:58기사원문
(5·끝)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트럼프 1년과 한국의 선택'
美中 패권경쟁은 '연성냉전'
시장 연결된 경쟁·협력 혼재
AI인프라 선점때 경쟁 우위
美, 힘을 통한 위험요소 제거
국제질서 붕괴 해석은 과도
4월 美中회담은 통상이 중심
美를 뒷배 삼아 中 관계 유지
피해 최소화 장기전략 세워야
국제질서 붕괴 해석은 과도
對中견제 위한 韓 위상 굳건
4월 美中회담은 통상이 중심
韓, 對中상대 美 핵심 파트너
美를 뒷배 삼아 中 관계 유지
피해 최소화 장기전략 세워야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2기 출범 이후, "그의 정책들이 폭주하면서 기존 국제질서와 규범을 무너뜨리고,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혹평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트럼프 개인의 거친 언사와 좌충우돌식 접근 스타일 등에 편승해 이 같은 혹평은 과장된 측면이 있으며, 기존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거나, 본질적으로 국제사회의 갈등을 더 조장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특히 반도체 및 주요 산업 제조 역량을 갖춘 한국이 미국과의 협력 속에서 국력 부상과 강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트럼프 1기 때부터 이 같은 주장을 해 온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그는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공급망·기술플랫폼 경쟁으로 번지는 상황은 한국에 새로운 강대국 반열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이의 선용을 주장해왔다. 이 교수는 현재의 미중 패권 경쟁을 "시장으로 연결된 경쟁과 협력이 혼재하는 상황으로, '연성냉전'"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미국이 새로 짜는 공급망·기술네트워크에서 핵심 기여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트럼프 1년의 평가와 향후 전망, 미중 패권 경쟁, 우리의 선택과 대응 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파이낸셜뉴스 서울 강남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20일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 1주년을 맞았다. 트럼프는 지난 1년 동안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

▲관세율은 올랐고, 이를 둘러싸고 국제사회도 시끄러웠다. 그러나 자유무역체제는 기본적으로는 그대로 작동하고 있고, 안보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다. 그는 북한 등 적대 국가들에 대해서도 대결적 자세를 취하지 않도록 호감을 전하면서 핵심적 당사자들을 대화 상대로 끌어들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중일 갈등에서도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안정적인 관리를 유지했다.

―트럼프가 규칙기반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훼손시키지 않았나.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그린란드 영유권을 요구하고, 일방적으로 관세를 올렸다. 기후협약에서 연거푸 탈퇴했고, 올 들어 유엔산하기구 등 66개의 국제기구에서 탈퇴했다.

▲제도와 규칙이 붕괴됐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그가 관세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면서 국제사회의 긴장이 높아졌고, 그의 언행이 불안을 키운 측면은 있다. 그러나 실제 분쟁이 커지지 않도록 통제하며 나아가고 있다. 파국을 회피하고 있다. 기본적인 국제사회의 틀이 바뀐 것도 없다. 그는 다자 기구와 체제가 작동하지 않고, 성과도 없으며 유용하지도 않다고 본다. 미국은 실익도 없이 재정만 지출하고, 지구온난화·탄소 배출 감축 등의 어젠다에서 이익은 중국이 다 가져갔다고 본다. 그는 현재를 미국의 위기로 보며,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하려고 한다. 국제기구와 동맹 기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길을 들이는 과정이다.

―미국은 무엇을 얻었나.

▲매달 200억~300억달러(약 29조~44조원)의 관세가 늘고, 불법 이민도 대폭 줄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작전으로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침투를 막았다. 힘을 통해 위협요소들을 사전에 제거·통제하려는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를 구사한 거다. 민주당의 다양성 정책(DEI) 폐지 등도 사회적 효율성 제고를 겨냥했다. 그린란드에서 그가 원하는 것은 땅과 영토가 아니라 안전과 통제력이다. 나토가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아태지역과 동북아, 한반도에 대한 트럼피즘의 영향은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는 서반구 안전을 우선시했다. '돈로주의' 등 신먼로주의로 불리는데 아태지역, 특히 동북아시아가 소홀히 취급되지 않을까.

▲'돈로주의'는 고립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다.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를 전방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줄어든 만큼, 제한된 자원으로 가까운 곳부터 책임 지고, 상대적으로 먼 곳은 동맹의 역할과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있다. NSS의 내용은 다 중국 이야기라고 할 정도로 중국을 중시하고 겨냥한다. 한국·일본·대만·호주·필리핀 등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더 인정했다. "당신들 없으면 안 된다"는 고백과 다름없다. 한국의 위상은 올라갔다.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외교정책의 일관성에는 변함이 없다.

―트럼프의 '거래적 실용주의'가 중국과의 빅딜을 위해 한국·대만의 핵심 이익을 희생시킬 우려는 없을까.

▲한국, 대만 등은 미국에 가장 중요한 수단(레버리지)이다. 이를 버리겠나. 미국과의 통상교섭 압박과 관련,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이 우선시돼야 한다. 순응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카드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미중 관계를 군사 대결 중심의 '신냉전'이 아닌 기술·경제·규범 경쟁이 얽힌 새로운 형태의 '연성냉전'으로 파악했는데.

▲과거 냉전처럼 진영이 완전히 갈라져 교류를 완전히 끊어버리며 '하나 살면 다른 하나가 죽는' 구조가 아니라, 시장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경쟁과 협력이 뒤섞인 현재의 상황이 '연성냉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완전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군사 대결 구도로만 미중 경쟁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식 접근은 '접근과 소원', 밀착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핵의 종류와 수량을 늘리는 핵의 수직적 확산 경쟁은 그럼에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연성냉전에서 미중 패권 경쟁의 게인체인저는 무엇이라고 보나.

▲앞으로의 경쟁은 무력 충돌이 아니라 시장,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낼 미래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 될 것이다. 연성냉전의 최전선이 AI 플랫폼 경쟁인 셈이다. 이 경쟁은 개별 기술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플랫폼을 구축해 더 많은 산업과 국가를 자기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이느냐의 싸움이다. 플랫폼을 선점한 쪽이 규칙과 표준을 만들고 장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AI가 산업·사회 전반의 인프라로 자리 잡는 순간, 경쟁은 기업 간 기술 다툼을 넘어 규범·데이터·공급망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경쟁으로 확장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미중 경쟁에서 누가 더 우위를 선점하고 있나.

▲미중 경쟁의 핵심 전장은 '글로벌 사우스'가 되고 있다. 서구 선진국 시장이 포화가 된 상황에서 성장 여력이 큰 국가들이 어떤(어느 나라의) AI 플랫폼과 생태계를 선택하느냐가 패권 경쟁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와 제조 역량을 갖춘 한국은 미국이 구축하는 기술·공급 네트워크에서 핵심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고 보나.

▲미중은 군사·외교적으로 긴장하더라도 시장과 공급망으로 얽혀 있고, 기술·플랫폼 경쟁 역시 완전 차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미국이 새로 짜는 공급망·기술 네트워크에서 핵심 기여자가 될 수 있다. 대중국 경쟁을 축으로 설계된 미국의 NSS에서 동아시아의 비중이 크게 부각됐다. 반도체·배터리 등 제조업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한국은 일본·대만과 함께 중국을 상대하는 핵심 파트너로 격상됐다. 미국을 뒷배로 삼아 미국에 발을 딛고, 미국의 플랫폼 안에서 같이 가면서 중국과는 관계유지,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접촉과 관계를 이어가며 위험을 관리하고 행동반경을 조정해야 한다. 한미 동맹과 미국과의 이런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중국의 자기장 안으로 빨려들어갈 우려도 크다.

―중국과의 인게이지먼트의 내용과 특징은.

▲이를 과거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전처럼 시장이 다 해결해 줄 거라는 식의 생각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공급망, 기술, 플랫폼 경쟁이 전제된 상황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하며 피해를 줄이고 시간을 버는 방향으로 가져가야 된다. 미중 압박이 교차하는 국면에서 무리한 선택을 하기보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들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AI, 휴머노이드, 전기자동차, 배터리, 양자 기술 등 하이테크의 빠른 성취를 바탕으로 중국의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기술들이 거의 미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기술력의 제고를 중국 경제의 안정성이나 지속 가능성과 연결 짓는 것은 무리이다. 성장 동력이 과거 인프라 투자와 부동산 중심 구조에서 제조업에 기반한 해외 수출로 이동했다. 내수 회복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산 능력만 확대되면서 과잉 생산이 누적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늘어난 생산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수출 의존도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무역흑자가 겉으로는 성과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구조 전환을 미루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내수 확대나 산업 조정을 통해 성장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생산된 물량을 계속 해외로 밀어내는 선택이 반복될 경우 중장기적인 부담도 누적된다. 건전하지 못한 흑자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 무역흑자가 늘 좋은 신호는 아니다. 여기에 자동화와 AI 도입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생산성은 높아지겠지만, 고용 측면에서 충격은 불가피하다.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 불안 요인으로 번질 수 있다.

―4월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와 전망을 한다면.

▲통상 문제가 대부분의 어젠다를 점할 것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로서는 선거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더 그렇다. 중국의 내수 문제, 불공정 무역 시정 및 미국의 플랫폼 확장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미국이 역점을 둔 플랫폼 확장 등은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구글 등 미국 플랫폼의 개방은 중국 지도부에는 사회·사상 통제 이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공급망 등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중국을 트럼프는 공급망의 재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국의 희토류 독점이 영원한 카드가 되긴 어렵다. 특정 국가가 공급망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순간, 기업과 국가들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대체 공급망을 만들려는 유인이 생기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무기화'의 효과가 약해지게 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약력 △62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다보스포럼 한반도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장 △저서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 (21세기북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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