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옷 수거함에 넣은 그 옷, 정말 재활용될까

파이낸셜뉴스       2026.01.24 06:00   수정 : 2026.01.24 06:00기사원문
재활용률 70%의 착시… 대부분은 소각·매립으로 사라진다
EU는 생산자 책임, 한국은 아직 태우는 중
한국, 2026년 본격 연구개발 착수



[파이낸셜뉴스] 한 해 한국에서 버려지는 폐의류는 30만 톤을 훌쩍 넘는다. 빠르게 유행이 바뀌는 패스트패션과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옷의 수명은 짧아졌고, 버려진 옷은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막대한 양의 의류 폐기물이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며 온실가스와 미세플라스틱, 화학오염을 동시에 남긴다는 점이다.

'입고 버리는 산업'의 끝이, 의류폐기물 재활용이 새로운 환경·산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재활용률 70%의 착시… 대부분은 '다운사이클링'


23일 기후부와 환경산업기술원 등에 따르면 1년에 한국에서 버려지는 폐의류는 약 30만~35만t 수준이며 이를 1인당으로 환산하면 연간 6~7㎏에 달한다. 통계상 국내 폐의류 재활용률은 70% 안팎으로 잡힌다. 그러나 이 수치는 착시에 가깝다. 재사용이나 산업용 전환까지 모두 '재활용'으로 묶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시 섬유 원료로 되돌아가는 비율은 5%에도 못 미친다는 분석이 많다. 나머지는 걸레, 자동차 내장재, 충전재, 단열재 등 저부가가치 용도로 쓰이다가 결국 다시 폐기된다.공정이 단순하고 비용이 낮지만, 섬유 길이가 짧아지고 품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반복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해 ‘순환’이라기보다 ‘폐기 지연’에 가깝다.

국내 폐의류 처리 구조의 기본값은 여전히 소각·매립이다. 헌옷 수거함을 통해 모인 물량 중 중고 의류로 재판매·수출되는 비율은 20% 안팎. 나머지는 선별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오염돼 소각장으로 향한다. 합성섬유 비중이 높아질수록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커진다.

재활용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소재 구조다. 국내 유통 의류의 절반 이상이 면과 폴리에스터 혼방이다. 여기에 염색·가공 공정에서 사용된 수십 종의 화학물질, 지퍼·단추·라벨 같은 부자재가 얽혀 있다. 단일 소재 플라스틱과 달리, 분리와 세척만으로 고품질 원료를 얻기 어렵다.

선별 자체도 어렵다. 현재 국내외 대부분의 폐의류 분류는 여전히 수작업에 의존한다. 작업자의 경험에 따라 재질을 추정하고 색상과 형태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느리고 오분류가 잦으며, 대량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별이 부정확하면 그 다음 단계의 재활용 기술은 의미를 잃는다. 단일소재로 정확히 분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고품질 재생섬유나 재생원료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 학계와 산업계에서도 이 지점을 ‘섬유 순환의 최대 병목’으로 지목하고 있다. 기술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전처리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계적 재활용만으로는 의류 산업의 자원 구조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많이 재활용해도 다시 옷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새 석유 원료 사용을 줄이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화학적 재활용


이같은 문제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화학적 재활용이다.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합성섬유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원래의 단량체나 중간 원료로 되돌린 뒤, 새 섬유로 재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품질 저하 없이 반복 재활용이 가능하고, 원유 기반 원료 사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재생섬유 시장이 연평균 10% 이상 성장해 2030년 5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에서도 혼방 섬유 선택 분해, 용매 기반 분리, 해중합 기술 등이 실증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비용과 에너지가 걸림돌이다. 화학적 재활용 공정은 고온·고압이 필요해 에너지 사용량이 많고, 재생 원료 가격은 아직 새 원료보다 20~30% 비싸다. 상용 플랜트 구축과 안정적 물량 확보가 관건이다.

기술보다 시스템 재활용의 성패는 선별에서 갈린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처럼 오염된 상태로 혼합 배출되면, 어떤 고급 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정확한 분리배출과 지역 단위 수거 인프라, 자동 선별 시스템 구축이 필수라는 얘기다.

근적외선(NIR) 센서로 소재를 자동 인식하는 선별 설비, RFID·디지털 태그를 활용해 제품 단계부터 소재 정보를 추적하는 시스템도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된다. ‘어떤 옷인지 알 수 있어야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U, 2025년부터 별도 수거 의무화


유럽연합(EU)은 2025년 1월부터 모든 회원국에 대해 의류·텍스타일 폐기물의 ‘별도 수거’를 의무화했다. 지금까지는 생활폐기물과 함께 버려지던 옷을 종이·플라스틱처럼 분리 배출하도록 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섬유 폐기물은 재활용 가능성이 높지만, 혼합 배출로 대부분 소각·매립되고 있다”며 제도 전환의 배경을 설명했다. EU 정책의 핵심은 2024년 개정된 ‘폐기물 프레임워크 지침(Waste Framework Directive)’이다. 이 지침은 회원국들이 2028년 4월까지 의류·텍스타일·신발 제품에 대해 생산자책임확대(EPR) 제도를 의무 도입하도록 규정했다.

EPR이 시행되면 브랜드, 제조사, 수입업체, 온라인 판매업체까지 EU 시장에 의류를 판매하는 모든 주체가 폐의류의 수거·선별·재활용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제품이 팔린 순간부터 ‘수명 종료 책임’이 기업에 귀속되는 구조다. 중국·한국 등 비EU 기업이 유럽에 판매하는 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EU는 단순 부담금 제도를 넘어 ‘에코 모듈레이션(eco‑modulation)’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재활용이 쉬운 단일 소재 제품,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이 높은 제품, 내구성이 높은 제품에는 부담금을 낮추고, 혼합 소재·재활용 곤란 제품에는 더 많은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고려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도 2026년 이후 섬유·의류 분야 순환경제 정책 도입을 검토 중이다. 재생 원료 사용 의무 비율, 회수 책임 강화, 친환경 설계 기준 도입이 거론된다. 업계는 비용 부담을 우려하지만, 글로벌 브랜드 공급망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도 올해부터 본격적 R&D착수
폐의류가 환경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이 ‘재활용 기술’이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연구개발(R&D)에 착수한다. 기후부는 2026년부터 폐의류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 R&D를 추진하며, 자동 선별 인프라 구축과 재생·제품화 체계 확립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1단계에서는 AI와 로봇을 활용해 의류의 형태·색상·재질·혼방 여부를 자동 인식하고 대량 분류하는 선별 시스템을 구축한다. 사람의 눈과 손에 의존하던 작업을 산업 인프라로 전환해 재활용 공정의 출발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2단계에서는 단일 소재 의류를 재생섬유로 되돌리는 ‘닫힌 고리’ 재활용과, 혼방 소재를 자동차·건축 자재 등으로 업사이클링하는 이원 전략을 추진한다. 모든 옷을 다시 옷으로 만들기보다 소재 특성에 맞는 현실적 순환 경로를 설정한 것이 특징이다.

환경산업기술원 관계자는 "이 사업은 폐의류를 환경 문제가 아닌 자원·산업 전략 대상으로 격상하고, 선별-재생-제품화-환경성 검증까지 전 과정을 설계한 첫 시도"라며 "재활용의 가능성을 넘어 ‘지속가능한 재활용 구조’를 만들겠다는 실험이 본격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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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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