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작동 방식 간과하면 규제든 뭐든 백약이 무효"

파이낸셜뉴스       2026.01.25 18:58   수정 : 2026.01.25 18:58기사원문
루 한 美 위스콘신대학교 교수
일시적 위축 뒤 수요 폭발 반복 현상
'정책·규제 강도 약했다' 해석하면 안 돼
시장 참가자의 전략적 행동 예측이 핵심
구간별로 세분화하거나 단계적 변화 등
'미세조정' 가능한 정책 설계가 관건
공급 탄력성 낮은 강남, 수요 억제로 한계
공급확대·수요분산 전략 동시에 추진해야
공급 여력 충분한 외곽지역의 경우
인프라 활성화 등 지역 맞춤형 해법 필요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정부의 강력한 대출규제와 세금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 반복적으로 도입돼 왔지만, 시장은 정책당국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반응해왔다.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거래량은 일시적으로 위축되는 듯 보이지만, 시차를 두고 가격이 오히려 상승하는 현상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괴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주택금융 및 부동산시장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의 루 한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단순히 "규제가 충분하지 않아서" 혹은 "정책 강도가 약해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주택시장 정책을 효과적으로 설계하려면 규제의 강도 자체보다도 시장 참가자들이 정책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에 맞춰 거래를 어떻게 조직하는지, 즉 주택시장의 미시적 작동방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대담에서 윤희진 위스콘신대 박사과정 학생과 루 한 교수는 주택시장 규제와 정책 효과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주택시장 정책 논의에서 가장 자주 간과되는 점은.

▲정책 논의 과정에서 시장 참가자들의 전략적 행동 변화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은 규제조항과 수치를 바탕으로 설계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그 규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 특히 주택시장은 거래 빈도가 낮고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으며, 한 번의 결정이 가계자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시장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주택시장 참가자들은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략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더 크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같은 기준선 기반 대출규제가 대표적 사례다. 특정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대출 가능금액 등 조건이 급격히 바뀌는 규제는 의도치 않은 행동 변화를 유발하기 쉽다. 기준선이 설정되는 순간 시장은 그 선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구매자와 판매자는 기준선을 넘지 않기 위해 가격을 조정하고 거래구조를 바꾸며, 심지어 거래시점까지 조절하기도 한다.

―한국의 최근 대출규제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나.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한 양상이 나타났다. 2025년 10월 이후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한도가 크게 축소되자 대출이 가능한 15억원 이하 주택으로 수요가 집중되며 해당 가격대 집값이 상승했다. 이로 인해 젊은 층이나 생애최초주택 구입자의 내집마련 문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반면 15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주택 시장에서는 대출 없이 거래되는 현금거래 비중이 늘어나는 흐름도 나타났다. 고가주택과 중저가주택 시장 간 구매자 구성이 양극화된 셈이다. 즉 규제가 강화될수록 자금여력이 풍부한 계층이 시장을 주도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자산이 부족한 계층은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조가 형성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선 기반 대출규제는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핵심은 정책설계 단계부터 시장 참가자들의 전략적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이 시장의 창의적인 대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출한도를 단일 기준선으로 설정하기보다 구간별로 세분화하거나 규제가 단계적으로 변화하도록 설계하면 규제차익을 노린 쏠림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나는 이를 '미세조정(micro calibration)'이라고 부른다.

―주제를 조금 바꿔 공급규제 측면에서는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은지.

▲주택규제의 효과를 논할 때 수요만큼 중요한 것이 주택의 공급탄력성이다. 최근 캐나다 토론토대 네이트 바움-스노우 교수와 정치경제학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 '주택 공급의 미시적 지리(The Microgeography of Housing Supply)'에서는 주택 공급탄력성의 차이가 '도시 간'보다 '도시 내'에서 훨씬 크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였다. 미국 300여개 대도시를 분석한 결과 공급탄력성은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높아지는 뚜렷한 공간적 패턴을 보였다. 즉 같은 규모의 수요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공급탄력성이 낮은 도심 지역에서는 신규 공급이 이를 흡수하지 못해 가격 상승으로 직결되는 반면 공급여력이 있는 외곽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가격조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도심일수록 공급이 어렵다는 뜻인가.

▲그렇다. 도심 밀집지역은 이미 개발이 포화 상태라 추가로 지을 땅이 부족하고, 고도제한이나 용적률 규제 등 제약도 많다.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쉽게 늘지 않는 비탄력적 시장이다. 반면 외곽 지역은 미개발 토지가 있고 규제도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어 수요를 흡수할 여지가 크다. 이러한 공급여건의 차이는 서울의 부동산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서울을 하나의 단일 주택시장으로 간주해 획일적인 규제를 적용할 경우 지역별로 상이한 공급 반응을 반영하지 못해 가격 왜곡과 수요 쏠림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

―그럼 강남 같은 핵심지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공급탄력성이 낮은 서울 중심부의 인기 주거지역은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규제가 강화돼도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면 가격 상승을 막기 어렵다. 이런 지역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한 도심 내 공급 확대와 교통망 확충을 통한 수요분산 전략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반면 공급여력이 있는 외곽 지역은 주택금융 지원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공급을 활성화하는 등 지역별 맞춤형 해법이 필요하다.

―그 밖에도 주택 거래과정의 미시적 동학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는데.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주택시장이 정보, 시간, 자금조달, 중개구조 등 다양한 마찰(friction)이 중첩된 시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마찰 때문에 가격과 거래량, 거래방식이 표준적인 경제이론의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택시장은 전형적인 '검색 시장(search market)'이다. 매수자와 매도자는 한 번에 만나지 않고 매도 호가(asking price) 설정, 입찰경쟁(bidding war), 자금조달의 불확실성(financing uncertainty), 중개인 네트워크(realtor network) 등을 거치며 시간을 두고 상대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가격은 단순한 균형값이 아니라 시장 상황과 기대를 반영하는 전략적 신호가 된다. 예를 들어 일부 전략적 판매자는 시세보다 낮은 호가를 제시해 의도적으로 입찰경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급매'로 나온 매물이 다수의 매수자를 끌어모아 단기간에 거래되거나, 오히려 최초 호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성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수요가 강한 시기일수록 낮은 호가는 더 많은 관심과 경쟁을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더 높은 최종 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호가는 단순한 가격 제시가 아니라 시장 분위기와 수요 강도를 반영하고 형성하는 전략적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입찰경쟁이 치열해지면 자금조달 방식 또한 시장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 같다.

▲입찰경쟁 상황에서는 단순히 "얼마를 써냈느냐"만큼이나 "그 돈을 얼마나 확실히 줄 수 있느냐"가 거래 성패를 좌우한다. 주택 거래는 상당한 클로징 기간(closing period)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매도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특히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핵심요인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된 환경에서는 매수자가 높은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은행의 심사 과정에서 탈락하면 거래가 무산될 위험(contingency risk)이 존재한다. 반면 현금동원 능력이 있는 구매자는 대출승인 절차 없이 거래를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에 매도자에게는 가격 이상의 '확실성 프리미엄'을 제공하는 셈이다.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현금 비중이 높은 자산가들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나.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홍승현 교수와 내가 파이낸스 리뷰(Review of Finance)에 공동 발표한 '현금이 왕이다? 주택시장의 자금조달 위험에 대한 고찰'에 따르면 여러 명의 매수자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매도자는 가격이 다소 낮더라도 현금결제 조건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는 자금여력이 부족한 젊은 층이나 생애최초주택 구입자에게 이중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규제로 인해 대출한도 자체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래 현장에서는 '불확실한 매수자'로 분류돼 입찰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규제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현금거래 비중이 늘어난 현상은 자산가들의 매수세 강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거래 메커니즘 자체가 대출 이용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한 결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거래를 연결하는 부동산중개인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주택시장은 정보가 중앙화돼 있지 않기에 매도자와 매수자가 서로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개인은 단순히 이들을 연결하는 알선자를 넘어 매물의 가치를 평가하고 적절한 매칭 상대를 선별하는 '정보의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수행한다. 경험 많고 유능한 중개인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매수자와 매도자의 탐색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시장 유동성을 공급한다. 특히 시장이 과열될 때 중개인은 매도자에게 어떤 호가 전략이 유효한지, 어떤 매수자가 자금 증빙이 확실한지 조언하며 거래 성사 가능성을 높인다.


■ 루 한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캠퍼스의 석좌교수이며, 주택금융과 부동산시장 분야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미국부동산·도시경제학회(AREUEA)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시경제학, 시장 미시구조, 산업조직, 부동산 금융의 교차영역에서 주택시장, 주거안정화 정책, 지속가능 성장, 모기지 제도 등을 연구하고 있다.

prid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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