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후 나태해서 8위? 헛소문... 내 170이닝, 이젠 민폐"… 양현종의 충격 고백, 왜?
파이낸셜뉴스
2026.01.26 20:57
수정 : 2026.01.26 21:08기사원문
"우승 후 나태? 안 좋게 포장된 것"… 억울함 토로한 대투수의 '진심'
20년 만에 지운 숫자 '170'… "내 욕심, 후배들에게 민폐 될까 두렵다"
"박찬호 눈물은 거짓말" 농담 속 짙은 아쉬움… "적군으로 만나면 머리 아플 것"
"허리 못 펴던 짐꾼이 한 손엔 커피를"… 돌아온 홍건희 보며 느낀 '격세지감'
[파이낸셜뉴스] 25일 김포공항. KIA 타이거즈 선수단이 스프링캠프지인 오키나와로 떠나기 위해 모였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팀의 상징인 대투수 양현종(38)에게는 낯선 공기였다. 늘 곁을 지키던 최형우도, 재간둥이 박찬호도 없다.
출국 인터뷰에 나선 양현종의 표정은 비장했다. 단순히 새 시즌을 시작하는 설렘보다는, 지난 시즌의 부진과 팀을 둘러싼 오해를 씻어내겠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그는 현장에서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재작년(2024년) 우승 후 지난 시즌(2025년)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나돌았던 '선수단 태만설'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양현종은 단호했다. "재작년 우승해서 작년에 운동을 열심히 안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솔직히 너무 안 좋게 포장돼서 나온 말이다." 그는 선을 그었다. 물론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도 안다. "성적을 못 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반성한다.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캠프에 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선수단이 흘린 땀방울이 '나태'로 매도되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베테랑의 항변이었다.
이날 인터뷰의 백미는 따로 있었다. 양현종의 입에서 나온 '민폐'라는 단어다.
매년 170이닝을 당연한 목표로 외치던 그였다. '이닝 이터'는 양현종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다. 하지만 2026시즌을 앞둔 그는 달랐다. "이닝 목표는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솔직히 저 개인적으로도, 제가 150이닝, 170이닝 이상 던지면 어린 선수들에게 좀 민폐가 되지 않을까요? 유독 올 시즌에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충격적인 고백이다. 이는 자신의 기량이 쇠퇴했음을 인정하는 패배 선언이 아니다. 팀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현실적인 경쟁을 위해 자신의 아집을 내려놓겠다는 '진짜 리더'의 선언이다. 그는 "150이닝이라는 숫자에 얽매이다 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올해는 코치님들이 정해준 역할만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숫자를 버리고, 팀의 승리라는 본질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떠난 사람과 돌아온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격세지감도 그를 변화시켰다. FA로 팀을 떠난 최형우와 박찬호의 빈자리는 크다. 특히 양현종은 박찬호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지만 "그 녀석은 눈물이 없는 애라 거짓말이다"라며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반면, 두산에서 다시 돌아온 홍건희를 보며 "옛날엔 짐만 날랐는데 이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있더라"며 웃었다. 15년 전 막내들이었던 그들이 이제 베테랑이 되어 만난 것이다.
세월은 흘렀고, 스쿼드는 변했다. 양현종은 이제 '무조건 많이 던지는 에이스'가 아닌, '후배들의 길을 터주며 경쟁하는 맏형'의 길을 택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뭐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양현종은 20년 차 프로 인생 처음으로 '숫자'를 지우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워낸 그 자리에 무엇이 채워질지, KIA의 2026년 캠프가 주목되는 이유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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