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남은 시간은

파이낸셜뉴스       2026.01.29 18:11   수정 : 2026.01.29 19:07기사원문

'인생 카운트다운 시계'라는 것이 있다. 세계적 미래학자이자 '와이어드(WIRED)' 잡지의 공동 창간자인 케빈 켈리가 널리 알린 개념이다. 예상 사망나이를 먼저 계산한 뒤 그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거꾸로 보여주는 장치다.

계산 방식은 단순하다. 나이와 체중, 흡연 여부, 음주 습관, 소득수준 같은 개인의 정보를 입력하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숫자로 표시된다. 이 시계는 남은 시간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현재의 선택과 준비에 따라 남은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개념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도 카운트다운 시계는 존재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보를 이 시계에 넣으면 남은 시간은 얼마나 나올까. 지표를 놓고 보면 여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출산율은 사실상 최저치다. 주력 산업 상당수는 이미 중국의 추격을 허용했거나 속도전에서 밀리고 있다.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대체로 2% 안팎이다. 전년 대비 성장했다는 사실만 보면 안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3%, 미국은 2.4%로 전망된다. 지난해 18년 만에 1인당 GDP에서 우리를 앞선 대만 역시 2%대 중후반 성장이 예상된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의 2% 성장은 '회복'이라기보다 저속주행에 가깝고, 이 상태가 고착될수록 카운트다운 시계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든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정부가 카운트다운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향성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최근 경제정책은 단순히 지표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한 구조개혁과 규제 혁파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조업 현장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체질을 바꾸는 '제조 AI 전환(M.AX)' 전략은 그 생존 설계도의 핵심 축이다.

결국 문제는 속도다.

중국 선전의 화웨이 본사는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연구와 실험, 의사결정이 동시에 돌아가는 그들에게 시간은 무기다. 이미 많은 산업에서 우리가 밀린 이유는 기술 하나 때문이 아니다.

결정이 늦었고, 실행은 더욱 더뎠다. 사실상 마지막 보루로 남은 반도체에서조차 '기술 격차보다 시간 격차가 더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강점도 갖고 있다. 반도체, 조선, 방산의 저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주가지수 5000선 돌파는 우리 기업의 잠재력을 시장이 여전히 믿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케빈 켈리의 카운트다운 시계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남은 시간은 고정돼 있지 않다. 어떻게 선택하고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늘어날 수도, 급격히 줄어들 수도 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던진 연설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는 "세계 질서의 붕괴와 함께, 강대국의 지정학이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잔혹한 현실이 시작됐다"며 말을 꺼냈다. 이어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결국 메뉴판에 오르는 신세(On the menu)가 된다"고 경고했다. 경쟁력을 잃은 국가는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에 휘둘린 우리 현실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산업통상부가 내놓은 '2030년 M.AX 기업 500개 육성'이 단순한 장밋빛 목표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정책이 현장의 속도로 구현된다면 대한민국의 성장 카운트다운 시계의 시간이 다시 넉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목표가 숫자로만 남는다면 시계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0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속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내는 속도가 곧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다.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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