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유·EU 견제까지…미·인도 무역합의에 담긴 복합 계산

파이낸셜뉴스       2026.02.03 11:04   수정 : 2026.02.03 11: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미국이 인도와 전격적으로 무역협정을 체결한 배경에는 지난주 타결된 인도·유럽연합(EU) 간 무역협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휴전 압박이라는 복합적인 지정학·통상 환경 변화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세 인하, 에너지 거래를 맞바꾼 합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즉시 발효되는 양국 간 무역협정에 합의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인도에 대한 상호 관세를 25%에서 18%로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인도는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중단하고 미국산 석유를 훨씬 더 많이 구매할 것이며, 잠재적으로는 베네수엘라산 석유도 구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인도는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이후 갈등을 겪으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여기에 더해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한다는 이유로 추가로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인도는 이에 대해 농산물 시장 개방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번 합의로 미국은 인도산 상품에 부과하던 관세를 기존 최대 50% 수준에서 18%로 대폭 낮추는 대신, 인도로부터 러시아산 원유 구매 중단과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역시 미국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제로(0)로 낮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모디 총리는 5000억 달러 이상의 미국산 에너지, 기술, 농산물, 석탄 및 기타 제품 구매에 더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미국산 구매'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고 "인도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18%로 인하돼 기쁘다"며 "14억 인도 국민을 대표해 이 훌륭한 발표를 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이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베네수엘라 원유, EU 견제까지


이번 합의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인도에 러시아산 원유 구매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미국은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하루 평균 130만~180만 배럴 수입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원유 수입의 약 35%에 달한다.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압박해 휴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러시아산 원유 구매 중단은 매주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전 협상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이번에 처음 말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협상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동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살리려는 목적도 깔려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이후, 붕괴 직전에 놓인 베네수엘라 석유 부문을 사실상 관리·통제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미국 주요 정유 업체들에 협조를 요청해왔으며,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 물량을 흡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요처도 필요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무역 협정에는 백악관의 두 가지 핵심 목표가 담겨 있지만,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향방은 결국 정치가 아니라 가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인도의 무역 합의는 인도가 앞서 유럽연합(EU)과 무역협정을 체결한 데 대한 직접적인 대응 성격도 짙다.
인도와 EU는 지난주 포괄적 무역협정을 맺었으며, 이는 미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경제를 다변화하려는 미국 동맹국들 간 협력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으로서는 인도가 유럽 쪽으로만 기울지 않도록 붙잡기 위해 협상에 속도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와 인도가 합의에 도달하고, 앞서 인도와 영국도 유사한 합의를 체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와도 반드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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