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폭탄보다 뜨거운 신념의 충돌, 연극 ‘정의의 사람들’

파이낸셜뉴스       2026.02.07 10:00   수정 : 2026.02.07 10:00기사원문
[알베르 카뮈 희곡 원작 연극 ‘정의의 사람들’]
실제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 고전 명작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메시지에 집중



[파이낸셜뉴스] "정의가 목적이라면, 그 목적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1905년 2월, 러시아 모스크바. 혁명의 열기로 가득 찬 어느 아파트에 다섯 명의 젊은이가 모였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폭정을 일삼는 세르게이 대공을 암살하여 인민을 해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사를 앞두고 이 '정의로운' 테러리스트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달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4관에서 개막한 연극 ‘정의의 사람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발표 이후 120여년이 지났음에도, 2026년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묵직하게 던진다.

"아이들이 있었어"…폭탄은 멈추고, 논쟁이 시작됐다


보는 것만으로 서늘한 추위가 느껴지는 무대 위, 수없이 쌓인 의자들 사이로 하나둘 혁명가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시작부터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덩달아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폭탄 투척을 맡은 시인이자 혁명가 '야네크'가 거사에 실패하고 돌아오면서 갈등이 폭발한다.

누구보다 이상적으로 정의를 이야기하던 야네크는 결전의 순간, 대공의 마차 안에 타고 있는 그의 어린 조카들을 보고 말았다. 자신이 죽여서 정의를 이루려던 건 압제자인 대공이지, 아이들이 아니었다고 울부짖는 야네크의 모습은 인간적인 양심을 지키려는 발버둥이다. 그러나 야네크의 정의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의 희생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 스테판의 정의와 충돌한다.

과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인간을 사랑해서 시작한 혁명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면 그것은 과연 혁명인가. 야네크와 스테판, 두 사람이 부르짖는 정의만이 아니다. 무대 위에는 각각의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각각의 정의가 괴롭게 떠돈다.



카뮈는 왜 그들을 '정의의 사람들'이라 불렀나


카뮈가 이 희곡을 집필하던 1940년대 후반은 이념 갈등으로 인한 무자비한 폭력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성마저 도구화하는 당대의 흐름에 반기를 들기 위해 1905년의 '섬세한 살인자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난제 앞에 또다시 연극 '정의의 사람들'을 소환한다.

자신이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만큼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음으로써 죄값을 치르려는 그들의 결벽증적인 태도는, 오늘날의 무차별적인 테러와 명확히 선을 긋는다. "우리는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죽는 거야."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야네크와 도라가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교수대 위에서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대의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짓밟아야 했던 혁명가들의 인간적 고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강조하는 메시지의 힘, 그리고 소극장의 몰입감


이번 2026년 프로덕션은 원작의 묵직한 메시지에 '젠더 프리(Gender-free) 캐스팅'이라는 현대적인 해석을 더했다.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배역을 캐스팅함으로써, 혁명가들의 고뇌가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순수한 열정을 지닌 주인공 '야네크'를 맡은 정지우와 이서현은 여리지만 강인한 내면을 가진 야네크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조직의 리더 '야넨코프' 역은 이정화와 이예준이 맡아 젠더프리 캐스팅의 매력을 보여준다.

야네크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도라' 역은 최하윤이 원 캐스트로 맡아 탁월한 연기력으로 절절한 감정을 쏟아낸다. 비정한 혁명가 '스테판' 역시 김준식이 원 캐스트로 맡았고, ‘부아노프’ 역에는 이사계와 김민호가 캐스팅됐다. 권력의 하수인 '스쿠라토프' 역은 최승하와 서주원, ‘공작부인’ 역은 전재희와 이재은이 맡았다.

소극장의 특성상,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폭탄을 쥔 손의 떨림까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포인트다.
연극 ‘정의의 사람들’은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4관에서 공연된다.

"요즘 어떤 공연이 볼 만하지?" 공연 덕후 기자가 매주 주말,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자가 직접 보고 엄선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채워줄 즐거운 문화생활 꿀팁, [주말엔 공연 한 잔]과 함께 하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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