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은 반복되는 종기에 거머리침을 맞고 쾌차했다
파이낸셜뉴스
2026.02.14 06:00
수정 : 2026.02.14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문종은 왕세자 시절부터 병약했다. 아버지인 세종이 죽고 나서 왕으로 즉위를 했지만, 찬 곳에서 여막살이를 하고 수시로 빈전에 드나들면서 과로를 일삼게 되었다.
영의정 하연과 좌의정 황보인은 “저하께서 전에 난 종기가 아직 낫지 않았는데, 또 종기가 발생했으니, 신 등은 몹시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잠시 대소사를 중지하시고 동궁에 물러가 계시면서 조섭하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종은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음력 3월이 되면서 종기에 고름이 겨우 그치고 흰 딱지가 앉았다. 이때를 가장 조심해야 하는데, 밖에서는 종기가 아문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안에서는 염증이 여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하들은 문종에게 과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음력 5월, 종기는 반복되었다. 의관들은 태을고(太乙膏)나 만응고(萬應膏)나 신효고(神效膏) 등의 고약을 바꿔서 붙여보기도 하고 침을 놓아 봤지만 통증은 잡히지 않고 다시 농이 차올랐다.
이때 한 의관이 “전하, 효과가 좋다는 고약들이 듣지를 않습니다. 이때는 거머리침이 최고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문종이 “존엄한 몸에 하찮은 거머리를 붙여서 치료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하고 놀라며 노했다.
그러자 의원은 차분하게 “이미 원나라 때 쓰여진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에는 거머리를 이용한 기침법(蜞針法)이 나옵니다. 거머리침은 옹저(癰疽)와 종기를 다스리는 데 쓰이는 것으로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이한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했다.
문종은 거머리요법이 의서에도 이미 나와 있다니 할 말이 없었다. 문종이 거머리침을 허락하자 의관은 약방에서 물과 함께 거머리가 담긴 거머리통을 가져왔다. 거머리통에는 십여 마리의 작은 거머리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거머리가 자잘할 것을 보니 이미 한참을 굶은 듯했다.
문종은 용포의 윗옷을 벗고 엎드렸다. 문종의 어깨 견정혈 부위에 밤톨만한 종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의관은 한지 한 장을 찬물에 적셔 종기 위에 덮었다. 그랬더니 가장 먼저 마르려고 하는 부위가 있었다. 그 부위에 바로 거머리를 물려야 하는 중심부인 것이다.
의관은 종이를 제거하고 나서 큰 붓관 하나를 그 위에 놓았다. 그러고 나서 거머리 한 마리를 붓관 안에 넣고 그런 다음 거머리 통에 들어 있던 찬물을 자주 부어 채워 넣었다. 위쪽 구멍은 명주천으로 구멍을 막아 거머리가 위로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다. 의관의 손놀림을 보니 이미 거머리침에 익숙한 듯했다.
문종이 “아~ 약간 따끔함이 있다. 어찌된 것이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관은 “이것은 거머리가 피부를 깨물었다는 신호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진정될 것이니 걱정 마시옵소서.”라고 안심을 시켰다. 사실 거머리는 물자마자 침샘에서 마취제를 주입하기 때문에 깨무는 통증은 곧바로 사라진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붓관을 살짝 들어 올려보니 붓관 안의 물이 밖으로 새어 나왔고 거머리가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의관은 붓관 위의 명추천을 제거하고 붓관을 서서히 들어 올리고서는 붓관 안으로 가느다란 막대를 집어넣어서 거머리 뒤 빨판을 떼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머리는 종기의 고름과 피를 빨아먹으면서 점차 통통해졌다. 그러더니 몇 식경(食頃)의 시간이 흐르자 이내 툭! 하고 떨어졌다. 처음에는 번데기만한 거머리가 이제 미꾸라지만큼이나 토실토실해졌다. 의관은 그 자리에 동일한 방법으로 거머리 서너마리를 반복해서 붙였다.
다음 날 아침 승정원에서 문안을 올렸다. “전하, 옥체는 어떠하오신지요. 의관의 말을 들으니 종기에 거머리를 물렸다고 해서 신들은 걱정이 많사옵니다.”라고 했다. 문종은 거머리침을 놓은 후 그 해는 그렇게 무사히 넘어갔다.
다음 해 문종 1년 음력 11월 가을. 문종은 마치 감기기운이 있는 것처럼 몸이 으슬거리면서 아팠다. 문종은 도승지에게 “지금 등의 한 군데가 쑤시고 아픈데, 따라서 머리 또한 약간 아프다. 내일 망제(望祭)에는 내가 마땅히 나가지 못할 것 같다.”라고 했다.
의관들이 진찰을 해 보니 문종의 등에 또다시 종기가 생긴 것이다. 의관들은 종기가 나면서 아픈 것에 고름을 빨아드리는 고약을 붙였다. 그랬더니 고름이 나오면서 두통도 차츰 좋아졌다. 그러나 종기는 완전하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의관은 다시 “전하, 작년 초여름에 시술했던 거머리침이 효과가 컸사옵니다. 다시 한번 거머리침을 놓는 것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그러자 문종은 “그런데 엄동설한에 거머리를 어디서 구한다는 말이냐?”하고 물었다. 의관은 “이미 거머리를 구해 놓았사옵니다. 겨울철이라도 논의 도랑이 깊게 파인 곳의 물을 빼낸 후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는 거머리들이 밖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겨울에도 거머리를 구할 수 있사옵니다.”라고 했다.
문종은 등에 난 종기에 다시 거머리침을 맞았다. 다음 날 아침 승정원에서 문안을 올리자, “어제 저녁에는 종기나 난 어깨 부위가 쑤시고 아파서 밤에 거머리를 붙인 뒤에는 약간의 가렵고 아픈 증상이 있기는 하지만 어제 저녁처럼 심하지 않다. 효험을 많이 보는 것 같아 의관이 시키는 대로 몇 번 더 거머리침을 맞고자 하니 거머리를 많이 구해 놓도록 하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틀 후 의관들이 거머리를 가지고 다시 왔다. 문종은 이렇게 해서 거머리침을 서너 차례 반복해서 맞았다. 며칠 후 문종은 “이제 거머리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거머리침이 효과가 좋은 듯하다. 이렇게 나아갈 것 같으니 이후로는 종기 때문에 다시 문안하지 말라.”라고 했다. 문종의 종기는 거머리침으로 그렇게 쾌차했다.
거머리요법은 살아있는 거머리를 피부에 물려서 치료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의서에는 기침법(蜞鍼法)이라고 했는데, 바로 거머리침법이다. ‘蜞(기)’는 거머리를 뜻하고, ‘鍼(침)’은 침을 의미하니, 침 대신 살아있는 거머리를 사용해 사혈과 어혈 제거, 독소 배출을 노린 치료법이다.
그러나 거머리요법은 단순히 피를 빼는 행위가 아니라, 거머리가 물어 혈액을 흡인하는 과정 자체가 치료의 핵심이다. 거머리는 피부를 물 때 통증을 줄이는 진통물질과 함께 항응고 작용을 하는 성분을 분비한다. 이로 인해 혈액순환 촉진, 소염진통, 신생혈관재생, 조직재생 등의 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혈관질환, 관절질환, 다양한 염증성 질환 등에 활용된다. 사라진 것 같았던 기침법은 요즘도 거머리요법으로 활용 중에 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문종실록>○ 문종 즉위년 1450년 2월 19일. 河演、皇甫仁、南智、朴從愚、鄭麟趾、許詡、李思哲等申曰: "邸下前未愈, 又發, 臣等不勝驚駭. 醫書云: ‘凡瘡口收歛之際, 尙忌起立行步.’ 揖對賓客, 登陟臺榭, 運動支體, 寒署勞倦, 正宜調節飮食, 以待瘡瘢平復, 精神如古, 氣力完全, 方無所忌. 今瘡未完, 而適遇大變, 廬于寒冷之處, 出入殯殿, 運身哀慟, 醫書所云, 不可不愼. 邸下爲宗廟、社稷、生民之主, 其可不自重耶? 請退居東宮調攝." 令曰: "予瘡, 一日一入殯殿, 大臣之言, 不可不從. 予當二三日, 停起動調理, 退居則予不敢." 請之再三, 不允. (하연·황보인·남지·박종우·정린지·허후·이사철 등이 아뢰기를, “저하께서 전에 앓으시던 종기가 아직 낫지 않았는데 또다시 종기가 생겼으니, 신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의서에 이르기를 ‘무릇 종기 상처가 아물어 가는 때에는 오히려 일어나 서거나 걷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손님을 맞아 읍하고, 누대에 오르내리며, 사지를 움직이고, 추위와 더위에 노출되며 수고로이 피로하게 하는 일은, 마땅히 음식 섭취를 절제하여 종기 자국이 평복되고 정신이 예전과 같아지며 기력이 완전해질 때를 기다린 뒤에야 금기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종기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는데 마침 큰 변고를 만나 차고 추운 곳에서 시묘하며 빈전에 출입하고 몸을 움직여 슬픔을 다하니, 의서에서 말한 바를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하는 종묘와 사직, 생민의 주인이시니, 어찌 스스로를 중히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바라건대 동궁으로 물러나 거처하시며 몸을 조리하시기를 청합니다.”하니, 전교하기를, “나의 종기는 하루에 한 번 빈전에 들어갈 뿐이니, 대신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마땅히 이삼 일 동안 거동을 멈추고 몸을 조리하겠으나, 물러나 거처하는 것은 감히 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여러 차례 거듭 청하였으나,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 문종 즉위년 5월 4일. 承政院啓曰: "臣等聞上明日詣殯殿, 前朣雖曰小愈, 尙未永痊, 後發朣蛭針未久, 毒未盡消, 請調理." 上曰: “予當更思.”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신들이 듣건대 상께서 내일 빈전에 나아가신다고 하나, 앞서 앓던 종기가 비록 조금 나았다고는 하나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으며, 뒤에 다시 발생한 종기는 거머리침을 놓은 지 오래되지 않아 독이 아직 다 소멸되지 않았으니, 부디 조리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 문종 1년 11월 15일. 承政院問安, 上曰: “所患處, 濃破付膏, 而濃汁出矣, 頭痛亦已向差.” (승정원에서 문안하니, 상이 이르기를, “앓는 곳이 곪아 터져 고약을 붙였고, 고름이 흘러나왔다. 두통도 이미 점차 나아지고 있다.” 하였다.)
○ 문종 1년 11월 16일. 承政院問安, 上曰: “昨日朝向差, 昨夕刺痛, 夜付水蛭後, 稍痒痛, 然不如昨夕.” (승정원에서 문안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제 아침에는 조금 나아지는 듯하였으나, 어젯밤에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밤에 거머리를 붙인 뒤로 약간 가렵고 아프기는 하나, 어젯밤만 하지는 않다.” 하였다.)
○ 문종 1년 11월 18일. 承政院及議政府、六曹問安, 傳敎曰: 漸次向差, 今後勿復問安. (승정원과 의정부, 육조에서 문안하니, 전교하기를, “차차 나아지고 있으니, 이후로는 다시 문안하지 말라.” 하였다.)
<세의득효방>원나라 위역림, 1345년 저술. 蜞針正法治癰癤, 不問老少. 初發腫作, 覺見稍大, 便以紙一片, 冷水浸, 搭瘡上;視其上一㸃先乾者, 即是正頂. 先以大筆管一箇, 安於正頂上, 卻用大馬蜞一條(本草名水蛭), 安其中, 頻以冷水灌之. 馬蜞當吮其正穴, 膿血出, 毒散, 是效. 如無大蜞, 小須用三四條, 方見功效. 若吮著正穴, 蜞必死, 用水救活, 其瘡即愈. 累試奇效, 乃去毒之一端也. 血不止, 以藕節上泥止之;白茅花亦效. (기침의 올바른 치료법은 옹저와 종기를 다스리는 데 쓰이는 것으로,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다. 병이 처음 생겨 부어오르고 점차 커진다고 느껴지면, 곧 종이 한 장을 찬물에 적셔 창 위에 덮고, 그 위를 살펴 가장 먼저 마르는 한 점을 찾는데, 그곳이 바로 병의 중심이다. 먼저 큰 붓대 하나를 그 중심 위에 놓고, 이어 큰 말거머리 한 마리를 그 안에 넣되, 이 거머리는 본초에서 말하는 수질이다. 그런 다음 찬물을 자주 부어 주면, 거머리가 병의 중심 혈자리를 빨아 고름과 피를 빼내어 독이 흩어지고 효과가 나타난다. 만약 큰 거머리가 없으면 작은 것을 세 마리나 네 마리 써야 비로소 효험을 볼 수 있다. 거머리가 정확한 혈자리를 빨면 반드시 죽게 되므로, 이때는 물로 살려 다시 쓰며, 그러면 창이 곧 낫는다. 여러 차례 시험해 보아도 기이한 효험이 있었으며, 이는 독을 제거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만약 피가 멎지 않으면 연근 마디의 진흙을 발라 지혈하고, 백모화도 역시 효과가 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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