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충격, 승패를 가른 건 '속도'였다
파이낸셜뉴스
2026.02.15 09:00
수정 : 2026.02.15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26년 1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 관세 25% 인상'을 전격 발표했다. 한미 FTA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 조치로 현대차와 기아는 연간 최대 10조 8,000억 원의 추가 비용을 떠안게 됐다. 영업이익의 20%가 한순간에 증발할 위기다.
그러나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다. 같은 충격파 아래서 어떤 기업은 48시간 만에 대응 시나리오를 가동했고, 어떤 기업은 두 달이 지나도록 "정부 지원을 기다려보자"며 방향조차 잡지 못했다. 운명을 가른 것은 자본력도, 기술력도 아닌 '조직이 결정을 내리는 속도'였다.
'25% 적용 시 72시간 내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발표'라는 구체적 행동 매뉴얼이 서랍 속이 아니라 실행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위기는 갑자기 왔지만, 대응은 갑작스럽지 않았던 셈이다.
반면, 상당수 중소 부품사와 경직된 대기업은 정반대의 경로를 밟았다. 상황 파악에 일주일, 부서별 영향 분석에 한 달, 이사회 보고와 외부 컨설팅에 또 수개월.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라는 명분 아래 결정을 유예했지만,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관세 부담이 고스란히 손실로 쌓이는 동안, 북미 시장의 주도권은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경쟁사들에게 넘어갔다. 10조 원이라는 관세보다 진짜 무서운 것은 결정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조직의 정체(停滯)'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어떻게 이런 속도를 만들어냈을까? 첫 번째 열쇠는 '책임의 명확화'다. 최고경영진이 직접 협상 전면에 나서며 "이 사안은 내가 책임진다, 최선의 대안을 가져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한마디가 부서 간 '책임 회피 게임'을 '문제 해결 경쟁'으로 전환시켰다.
리더가 책임의 무게를 먼저 짊어질 때, 조직원들은 비로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움직인다. 위기 상황에서 조직이 얼어붙는 근본 원인은 대부분 정보 부족이 아니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물음이 공중에 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열쇠는 '불완전성을 수용하는 능력'이다. 위기 상황에서 100% 확실한 정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데이터를 기다리다가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현대차는 확보된 정보를 기반으로 먼저 방향을 정한 뒤,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전략을 보정해 나가는 애자일(Agile) 의사결정을 택했다.
70%의 확신으로 빠르게 실행하고, 나머지 30%는 움직이면서 채워나간 것이다. 결정의 완벽함보다 결정의 시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직 전체가 체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주목할 점은 현대차가 이번 사태를 단기 방어에 그치지 않고 장기 체질 개선의 기회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미국 내 현지 생산 비중을 80%로 확대하고, 미 공장에 AI 기반 로봇을 배치하는 등 공급망의 근본적 재편에 착수했다.
관세 리스크를 단순한 비용 손실로 끝내지 않고, 글로벌 생산 체계를 뜯어고치는 전략적 전환점으로 삼은 것이다. 위기에 대한 조직의 첫 번째 반응이 '방어'냐 '재설계'냐에 따라 그 기업의 5년 후가 결정된다.
피터 드러커는 "격동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과거의 논리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20세기식 수직적 관료 구조로 21세기의 변동성을 이겨낼 수 없다. 지금 우리 기업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 조직은 다음 위기 앞에서 48시간 안에 실행 가능한 답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관세율은 협상 테이블에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굳어진 조직의 경직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음 위기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움직이는 조직의 설계도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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