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보다 홈플러스를 보라
파이낸셜뉴스
2026.02.12 18:16
수정 : 2026.02.12 18:35기사원문
입법 당시는 유통산업의 초호황기였다.
자고 나면 마트 3사가 전국에서, 해외에서 출점 경쟁을 벌였다. 필자가 중국 장춘의 롯데마트 200호점 오픈식 출장을 갔던 것도 이 시기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동네 슈퍼와 전통시장이 무너진다는 소상공인들의 외침과 정치권의 압박 앞에 규제의 대못이 박혔다.
언뜻 고사 직전인 대형마트들에 산소호흡기를 붙여주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작 마트·슈퍼 업계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정부가 '대단한 시혜'라도 베푸는 듯 생색을 낸다는 반응이다. 업계가 마주한 진실은 차갑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대책이란 게 '몸통'이 아닌 '곁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유통산업발전법은 도그마에서 비롯된 사생아라 할 수 있다. 대형마트가 쉬면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에서 착안됐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세상을 삼킨 오늘날 처참한 실패로 증명됐다. 마트가 문을 닫는 일요일, 소비자들은 전통시장 장바구니 대신 쿠팡의 '와우' 버튼을 누른다.
국회나 정부가 무려 14년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마트가 적자에 빠지고, 홈플러스가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으니 말이다. 알고도 바꿀 '의지'가 없었다는 게 솔직하다. 마트 업계가 어찌 되든 전통시장과 골목상인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이번 규제 완화 움직임도 온전히 대형마트를 위해서라고 믿기 어렵다. 그저 '제2의 쿠팡 사태'를 막아 여론의 뭇매를 피하겠다는 정치적 속내가 뻔히 보인다.
마트 업계가 이번 대책에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원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새벽배송 허용'이라는 파편적 조치가 아니다. 몸통은 '월 2회 의무휴업 폐지'와 '영업시간 제한의 전면 재검토'다.
현실적으로 새벽배송은 대형마트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다. 심야 인력 운영비용, 물류 시스템 재정비, 신선식품 폐기 관리 등 천문학적인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한 마트업계 임원은 "섣불리 새벽배송에 투자했다가 인건비와 재고만 떠안을까 주저되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이미 이커머스 강자들이 장악한 새벽시장에 뒤늦게 진입하려면 출혈경쟁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달에 두 번, 그것도 매출이 폭발하는 일요일 영업을 강제로 멈춰야 하는 족쇄는 그대로다. 주말 영업을 통해 창출되는 현금 흐름이 막힌 상태에서 새벽배송 인프라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누가 새벽배송 허용을 두 팔 벌려 환영하겠는가.
솔직히 정치인들도 대형마트 쉬는 날 전통시장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현대 문명의 소비자들이니까. 마트 규제는 주변 상권까지 동반쇠락하는 '낙수효과의 역전 현상'만을 낳았다. 진정으로 마트산업을 걱정한다면, 누더기식 법 개정은 멈춰야 한다. '새벽배송만 허용'이라는 미봉책으로는 이커머스의 독주도, 오프라인 마트의 붕괴도 막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14년 전의 낡은 가치관에서 벗어나 유통산업발전법 자체를 해체 수준으로 재설계하는 결단이다.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거나 전면 폐지하면 전통시장이 힘들어진다는 건 가설에 불과하다. 영업시간 제한도 지자체 자율에 맡겨야 한다. 쿠팡을 견제하는 것보다 '제2의 홈플러스' 방지가 급선무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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