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와 호통만으로 경제 못 살린다
파이낸셜뉴스
2026.02.18 19:28
수정 : 2026.02.18 19:28기사원문
소상인 살리려 대형마트 규제
골목상권 대신 쿠팡 등만 수혜
약자 위한다며 강자 키운 역설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는 이해
규제와 증세 압박만으론 한계
서민 피해 없앨 정책 조합 필수
곧이어 들른 한 대형마트의 한산해 보이는 매장 분위기는 더욱 그랬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에서는 설 대목의 온기가 느껴졌다. 택배차량과 가가호호를 누비는 배송직원들의 분주한 모습과 함께. 그래서 오프라인 시장과 온라인 택배 시장의 이런 온도차는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궁금했다. 의문은 곧 풀렸다. 정부·여당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산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하자 뉴욕 증시에서 쿠팡 주가가 하루 새 13% 이상 급락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다.
2012년부터 대형마트는 매월 2회 쉬어야 하고, 자정부터 오전 10까지 문을 닫아야 했다. 정치권이 '재래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유산법'을 도입하면서다. 특히 소비자들은 영업규제 시간엔 온라인 주문 배송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재래시장 대신 쿠팡 같은 이커머스로 눈을 돌렸다.
유산법이 '골목상권 보호법'이 아닌 '쿠팡 지원법' 노릇을 한 꼴이다. 쿠팡의 한해 매출액이 대형마트 3사 전체 매출을 넘어선 사실이 그 방증이다. 상장 직전인 2020년만 해도 3사의 절반 수준이었는데…. 마구잡이로 규제의 칼을 휘두른 대가치곤 참담했다. 파이를 나누려다 소상인을 더 궁지로 모는 역설을 빚었으니 말이다.
다만 시장이 만능일 수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합리한 원·하청 관계나 지역·계층·세대별 양극화 심화 등 시장의 실패 시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분명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명분에만 집착하는 과잉규제는 더 큰 화를 부르기 십상이다. 소비자 편익만 훼손하고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게 뻔해서다. 원격의료를 봉쇄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싹을 자르거나, 획일적 주 52시간제를 고집해 첨단 연구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듯이.
'경제는 정치인이 잠잘 때 성장한다' 우리보다 먼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정착된 서구 사회의 경구다. 정치권이 인기영합에 급급해 시장논리를 무시하면 외려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함의다. 그래서 각종 정책이 포퓰리즘에 휘말려 왜곡되는 우리 정치판이 사뭇 걱정스럽다. 집값 잡기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이 정밀한 정책보다 SNS를 통한 '사이다 발언'을 앞세우는 데서 보듯이 말이다.
물론 단시일 내 대규모 주택 공급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해지해 공급 물량을 얼마간 늘리려는 대통령의 의도는 이해된다. 오랫동안 무주택자였다가 현재 1주택자인 필자도 심정적으론 이에 공감하는 쪽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을 향해 "마귀" 운운하면서 전월세 주택을 공급하는 역할마저 부정하는 대통령의 거친 의사에 다수 국민이 동의하진 않을 듯싶다.
주택시장은 '다주택자=부동산 투기꾼'이란 이분법으로 접근해선 안정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종합부동산세 등 징벌적 세금을 총동원했던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반면교사다. 그런데도 지금 이 대통령은 "5월 9일까지가 양도세 중과 면제의 마지막 기회"라는 등 연일 다주택자들을 압박 중이다. 하지만 주택 매물이 일부 늘고는 있으나, 이사철에 앞서 서울 외곽의 전세 물량이 급감하는 풍선효과가 더 두드러진다.
경제주체로서 국민은 누구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탄 개인이다. 그 욕망엔 주택 소유도 포함돼 있다. 이재명 정부 청와대 참모 12명과 장관 6명이 다주택자인 데서 보듯이. 그러니 다주택자를 마귀로 몬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이들이 집을 내놔도 현 정부의 정책 헛발질로 대출이 막힌 서민 무주택 실수요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세금이 무서워 1주택 소유 은퇴자가 파는 집조차 '똘똘한 한 채'를 찾는 현금부자가 차지할 소지도 크다. 경제학 족보에 없는 '지시경제'로 집값을 잡으려 하지 말고 서민이 '유탄'을 맞지 않도록 정교한 정책 조합을 강구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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