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박물관을 건립하자

파이낸셜뉴스       2026.02.22 19:10   수정 : 2026.02.22 19:10기사원문
식민지배·전쟁의 폐허 딛고 일어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산업화의 기적’
우리 성공스토리 보여줄 공간 필요
‘대한민국 미래는 과학기술에 있다’
자라나는 세대에 메시지 심어주고
‘퍼스트 무버’로 전세계와 공유해야



최근 문화계에서 들려온 소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650만명의 관람객을 맞이하며 세계 4위권 박물관으로 우뚝 섰다는 사실이다. 이는 루브르나 바티칸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놀라운 성과다.

이러한 쾌거는 단순히 유물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전 세계를 강타한 K컬처의 팬덤이 한국의 뿌리인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 결과다.

특히 최근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한국적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2점의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사유의 방'이 보여주듯, 우리의 전시기획 역량도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할 것이 유구한 역사와 문화뿐일까? 우리에게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또 하나의 위대한 서사가 있다. 바로 식민지배와 참혹한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산업화의 기적'이다.

1960년대 가발과 섬유를 수출하던 나라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반도체, 자동차, 선박, 배터리를 생산하는 제조강국이 된 과정은 전 세계가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 기적의 드라마를 집대성하여 보여줄 공간이 없다. 흩어진 기술과 땀의 기록을 꿰어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로 엮어낼 '기억의 공간', 즉 '대한민국 산업기술박물관' 건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혹자는 묻는다. "전국에 훌륭한 과학관이 많은데 왜 또 산업기술박물관이 필요한가?" 과학관은 뉴턴의 법칙과 열역학 법칙 등 '과학의 원리'를 가르치는 곳이다. 하지만 산업기술박물관은 그 원리를 이용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사람과 도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엔진의 작동원리를 배우는 것과 도면 한 장 없는 불모지에서 그 엔진을 국산화하기 위해 수없는 실패를 거듭하며 밤을 지새운 엔지니어의 피땀 어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과 교훈을 준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공간을 통해 후대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는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기부터 달에 착륙한 아폴로 우주선이 한자리에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미국의 역사는 곧 도전의 역사'임을 눈으로 확인한다. 영국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로서 증기기관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며, 독일 뮌헨의 도이치박물관은 탄광 갱도부터 최신 항공기까지 전시하여 '독일 엔지니어는 이곳에서 꿈을 꾼다'는 자부심을 증명하고 있다.

산업기술박물관은 과거의 영광만을 전시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은 우리 산업의 독보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미래의 해법을 찾는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부존자원의 한계를 인재와 기술, 그리고 과감한 투자로 극복해왔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독특한 나라다. 양질의 산업 데이터와 노하우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한 물리AI로 어떻게 산업경쟁력을 높이는지 미래의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기술박물관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산업인과 과학기술인의 헌신에 존경을 표하고,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인구 감소로 인한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는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심어주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인재양성 전략은 없다.

대한민국 산업기술박물관에 들어서면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을 지나 정보통신 혁명을 거쳐 바이오와 AI로 뻗어 나가는 거대한 발전의 파노라마가 펼쳐져야 한다.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던 '추격자'에서, 이제는 세상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거듭난 우리의 치열했던 도전기를 전 세계와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제2의 국립중앙박물관 신화를 만드는 길이자,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과학기술의 가치를 드높이고 미래의 혁신가를 길러내는 가장 확실한 투자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고, 그 기억을 통해 만들어갈 찬란한 미래가 있다. 산업기술박물관 건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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