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까, 도망칠까…0.1초의 판단을 내리는 호르몬은?

파이낸셜뉴스       2026.03.07 07:00   수정 : 2026.03.07 07: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스트레스는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만 사실 우리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잘 다루기 위해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불안과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모두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을 것이다.

다행히도 불안과 두려움이 생길 때 신장 위에 있는 내분비기관인 부신에서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팔다리 근육에 힘이 생기고 눈이 밝아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 에너지 덕분에 우리는 힘을 내서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다.

우리는 아마 에피네프린보다 아드레날린이라는 이름에 더 친숙할 것이다. 보통 유럽에서는 아드레날린이라고 부르고 미국은 에피네프린이라고 부른다. 아드레날린이 더 친숙하긴 하지만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국제일반명이 에피네프린이고 학문 분야에서도 이 명칭을 사용한다.

에피네프린이 분비되면 순식간에 혈압이 높아지고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흥분한다. 팔다리로 피가 빠르게 공급되면서 근육에 힘이 솟는다. 이처럼 갑자기 에피네프린이 쏟아지듯 분비되는 현상을 '에피네프린 러시'라고 부른다. 에피네프린 러시 덕분에 우리는 두려움 생길 때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강해진다.

그리고 판단한다.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Fight or Flight?) 이것이 투쟁해야 할 상황인지, 아니면 도피해야 할 상황인지, 순식간에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게 해주는 것이 에피네프린 호르몬의 역할이다.

한번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동차에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엄마가 자동차를 들어올렸다는 이야기, 전쟁터에서 군인이 어깨에 총을 맞았는지도 모르고 전우들을 구하며 끝까지 싸웠다는 이야기, 격투기 챔피언이 경기 중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으면서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이야기, 산에서 맹수를 만났을 때 올림픽 육상선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어서 피했다는 이야기…. 모두 에피네프린 덕분이다.

에피네프린은 이렇게 순식간에 팔다리 근육으로 혈액을 보내어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고 혈액의 포도당 농도를 높여 뇌로 빠르게 전달한다. 동시에 고통을 인식하는 기능을 정지시켜 싸움에 집중하게 해준다. 그야말로 온몸을 위기에 대항하는 비상체제로 전환해준다.

그렇다면 노르에피네프린은 무엇일까? 노르에피네프린은 에피네프린의 전구체이면서 똑같이 부신수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 둘은 똑같이 스트레스 호르몬의 기능을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선 부신수질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보다 에피네프린의 분비가 훨씬 우세하다. 대신에 교감신경 말단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우세하다.

이 둘은 뇌에서도 합성되는데 뇌에서 에피네프린의 역할은 크지 않고 주로 생리적 효과를 낸다면 노르에피네프린의 효과는 매우 크고 정신적인 효과까지 낸다. 즉, 인지능력 강화, 주의력 강화, 기억력 강화 등,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리가 맑아지는 각성제와 같은 효과를 낸다.

노르에피네프린은 도파민으로부터 합성되기 때문에 도파민이 많이 분비될 때 노르에피네프린도 많이 분비된다. 목표가 생겨서 의욕이 샘솟을 때 정신이 맑아지고 힘이 솟구치는 것은 도파민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면서 노르에피네프린도 함께 치솟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우리 몸에서 이런 물질이 분비되는 것은 축복이다. 이 물질들이 분비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삶의 여러 문제들을 견디며 이겨낼 힘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된 후에는 호르몬 수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긴장이 확 풀리고 몸에 힘이 빠지게 된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한만큼 극도로 피곤함을 느끼고 두통과 근육통이 밀려온다. 이런 일을 자주 반복하게 되면 그만큼 몸에 무리가 가게 된다. 스트레스가 새치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질환을 유발하고 비만을 초래하는 것은 스트레스에 대항한 호르몬들이 남기고 간 상처라고 볼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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