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언어가 된 빛과 향… 200년 한옥 물들인 현대미술
파이낸셜뉴스
2026.02.27 04:30
수정 : 2026.02.27 04:30기사원문
부암동 '갤러리 투힐미' 개관전 김병종 작가, 자연 통해 탄생과 소멸 표현 강렬한 색채의 꽃 등 생명의 에너지 그려 미디어 아티스트 '진실' 영상 6점 공개 집단적 존재에 대한 질문 빛으로 풀어내 김현선 대표 "공간의 향도 관람의 일환"
"갤러리 '투힐미(To Heal Me)' 는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입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문을 연 갤러리 투힐미. 200년 넘은 전통 한옥과 현대적 콘크리트 건축이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 덕분에 부암동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와 현대적 미감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현선 투힐미 대표가 갤러리 개관과 함께 새롭게 조향한 향을 론칭해 두 작가의 작품과 향을 하나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게 전시를 구성한 것이다. 현재 투힐미는 개관전으로 김병종·진실 작가 2인전 '생명의 노래, 빛과 향으로 스며들다'를 열고 있다. 오는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김병종 작가가 평생 묻고 그려온 '생명'이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서 시각과 청각과 후각의 세 감각이 공명하며 고요하게 조우한다.
김 대표는 개관전에 대해 "빛의 숨과 빛의 결이 포개져 순간의 생명을 밝히는 자리"라면서 "그 지점에서 향은 보이지 않는 세 번째 언어가 돼 작품과 공간, 마음 사이에 잔잔한 울림을 채운다"고 평했다.
김 대표는 환경디자이너이자 홍익대 교수로, 김현선디자인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미술학 박사를 받았으며, 지난 2020년 제9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제5회 국가상징디자인공모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생명 화가' 김병종, 26점 공개
전시의 한 축은 김 작가다. 평생 '생명'이라는 질문을 화폭에 담아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26점을 선보인다. 대표작 '화홍(2024)'은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꽃으로 생명의 에너지를 응축한다. 붉음은 단순한 색채가 아닌, 탄생과 소멸의 가장 뜨거운 경계다. 마치 찰나의 문턱에서 색은 삶의 숨결을 그려내는 듯하다. 또 다른 대표작 '화록산수(2024)'는 산의 고요와 꽃의 숨결이 서로의 결을 비추는 화면이다. 산수의 구조 속에서 생명의 색이 드러나며, 잠들어 있던 시간이 서서히 깨어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풍죽(2023)'도 푸른 바람이 지나간 자리의 대나무를 그린 대표작이다. 긴장과 유연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선의 리듬이 화면을 채운다.
■진실 작가, 빛으로 질문하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미디어 아티스트 진실 작가다. 영상 6점을 출품한 그의 'Coexistence(공존)' 연작은 자아와 환경, 타인, 집단적 존재에 대한 질문을 빛으로 풀어낸다. 그의 대표작 'Coexistence I: Self and Environment(공존 I: 자아와 환경·2025)'는 투명한 신체가 주변의 빛과 색을 흡수하며 자아와 환경의 경계를 지운다. 나를 비추는 세계가 다시 나를 형성하는 순간을 영상 언어로 시각화한 것이다.
'Coexistence II: Self and the Other(공존 II: 자아와 타자·2025)'도 거대한 눈 속에 투명한 존재가 자리한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형태는 깜박임마다 흔들리고,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관계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타인을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자신이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Coexistence III: Collective Presence(공존 III: 집단적 존재감·2025)'는 다수의 존재가 하나의 생태적 호흡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인물과 식물, 빛과 색이 중첩되며 개별적 존재는 점차 하나의 리듬으로 통합된다. 공존은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 작가가 색으로 생명의 근원을 묻는다면, 진실 작가는 빛으로 존재의 관계를 확장한다. 회화와 영상은 서로 다른 매체지만, '생명'이라는 질문 앞에서 하나의 축을 이룬다.
이번 전시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요소는 향이다. 김 대표는 개관과 함께 새로운 향을 조향해 전시 공간에 도입했다. 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의 공기를 형성한다. 작품 앞에 서는 순간 관람객들은 색과 빛을 인식하는 동시에 은은한 향을 경험한다. 시각 중심의 전시 환경에 후각이 더해지며 감각은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김 대표는 "시각은 생각을 자극하고, 향은 기억과 감정을 깨운다"며 "향은 전시의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구조적 장치로 설계됐는데, 작품과 공간, 관람자의 감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 "감각을 통해 마음을 깨우는 미학"
투힐미라는 갤러리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투힐미에서 '치유'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공간 안에서 감각을 다시 인식하는 순간, 전시는 개인의 경험으로 완성된 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투힐미는 오래된 주택을 리노베이션해 조성됐다. 마당에는 200년 된 전통 한옥이 함께 자리한다. 현대적 전시 공간과 전통 건축이 공존하는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대비가 아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개관 취지에 맞게 이번 전시도 전통과 동시대 감각, 회화와 영상, 향이 하나의 동선 안에서 이어지는 만큼, 감각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비춘다.
감각을 통해 마음을 깨우는 미학을 선보이겠다는 김 대표는 이번 개관전을 통해 투힐미의 향후 전시 방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빠른 소비와 자극이 반복되는 시대에, 감각을 천천히 열어가는 구조를 제안하고 싶었다"며 "형태를 넘어 몸 전체로 흐르는 오감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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