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s 이란, 33㎞의 '에너지 목줄' 호르무즈

파이낸셜뉴스       2026.03.03 11:33   수정 : 2026.03.03 11:33기사원문
석유·LNG·비료 지경학적 급소
미국 정밀 타격 vs 이란 게릴라식 방화
금융시장의 기만적 고요와 실물 물류의 패닉
에너지 의존도 70% 한국도 직접 연관



[파이낸셜뉴스] "이틀 전만 해도 이란 정권은 오만만에 11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오늘은 단 한 척도 남지 않았다. 수십 년간 국제 해운을 괴롭혀온 시대는 끝났다." (미국 중부사령부 성명)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됐다.

통과를 시도하는 어떤 선박도 공격해 불태워버릴 것이며 단 한 방울의 기름도 이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 (에브라힘 자바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고문)


'세계 에너지의 혈맥'이라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거대한 화약고로 변했다. 양측의 선전포고는 두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을 넘어 글로벌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정학적 대격변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미국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 작전으로 이란의 핵심 해군 자산인 드론 항공모함 '샤히드 바게리'호 등이 격침되며 이란의 물리적 통제권은 크게 약화됐다. 하지만 이란이 자폭 드론과 지대함 미사일을 활용한 게릴라식 방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 해상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33km의 지경학적 급소… 석유부터 비료까지 '올스톱' 위기


호르무즈 해협이 이토록 치명적인 이유는 이곳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지경학적 가치 때문이다. 오만과 이란 사이의 가장 좁은 구간 폭은 약 33km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하루 약 2000만 배럴)가 이곳을 통과한다.

단순히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타르 등에서 생산되는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20%, 농업의 필수재인 요소(Urea) 비료의 세계 공급량 3분의 1이 이 좁은 길목을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커먼웰스은행의 글로벌 경제 책임자 조셉 카퍼소는 "현 상황은 글로벌 경제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라며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공급 중단 때보다 더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타격이 빚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또 다른 지점은 중동의 해군 전력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란은 정규 함대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드론과 고속정을 결합한 비대칭 전력을 극대화해 왔다. 특히 이번에 미군에 의해 격침된 샤히드 바게리호는 상선을 개조한 드론 항모로, 좁은 해협 내에서 수십 대의 자폭 드론을 띄워 민간 선박을 방화하는 '벌떼 공격'의 핵심이었다.

미국 역시 이에 대응해 기존 항모 전단 중심의 작전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기반 정밀 타격과 무인 잠수정을 동원한 에픽 퓨리 작전으로 이란의 거점을 단숨에 무력화했다. 이는 향후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이 화력 싸움이 아닌 초정밀 감시망과 무인 플랫폼 간의 전자전 양상으로 흐를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이 이란 함정을 '제로'로 만들었다고 자신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압도적인 기술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불확실성에 떨고 있는 기업들, 한국에도 치명적


일각에서는 뉴욕 증시나 코스피의 반응이 예상보다 담담하다는 점을 들어 위기설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폭풍 전야의 기만적 고요라고 경고한다. 투자은행 바렌조이의 조나단 맥매너민 수석 경제학자는 현 상황을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국면의 시작으로 정의했다.

실제로 금융 지표와 달리 실물 경제의 혈관인 보험과 물류 시장은 이미 마비 상태다. 맥길 앤 파트너스의 해상 보험 부문 책임자 데이비드 스미스는 "보험 인수업자들은 이제 호르무즈 통과 선박에 대한 보험 계약 제안을 아예 거절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통과를 강행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전쟁 위험 보험료는 불과 일주일 만에 0.125%에서 0.4%로 폭등했다. 대형 유조선 한 척당 약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의 비용이 추가되는 셈이다.

인포메트릭스의 최고경제학자 브래드 올슨 역시 "불과 며칠 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공포스러운 곳이 됐다"면서 공급망 붕괴가 곧 소비자 물가를 덮칠 것임을 예고했다.

제조업 수출 국가인 한국에게 호르무즈는 곧 생존이다. 한국 원유의 70%, LNG의 3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이는 한국 전체 에너지 소비의 절반 이상(56%)을 차지한다.


다행히 한국은 1억배럴 이상의 전략 비축유와 50일 이상의 LNG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당장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제 유가 120달러 돌파 시, 석유화학·항공·해운업계의 수익성 악화와 물류비 급등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우회 항로 이용 시 운송 기간이 최대 일주일 연장되고 물류비는 8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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