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못찍고 기록도 남길 수 없는 '티노 세갈' 展..'우린 무엇을 느낄까'

파이낸셜뉴스       2026.03.05 15:31   수정 : 2026.03.05 15:3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디스 이즈 소 컨템퍼러리(This is so contemporary·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전시장에 들어서자 안내 직원처럼 보이는 이들이 몸을 흔들며 관람객들에게 구호를 반복한다. 가까이 다가와 쑥스러웠지만 이내 그들의 예술적 표현에 손을 흔들게 됐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품이 펼쳐지는 순간,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2004)가 완성된다.

관람객들은 더 이상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가 돼 전시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전시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자전거를 타고 거꾸로 움직이며 균형을 잡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공을 머리 위에 올리고 묘기를 부리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키스(2002)'다. 두 남녀가 바닥에 누워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무한 키스하며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로지 인간의 신체와 몸짓, 언어를 재료로 한 행위예술 전시가 화려하게 개막했다. 리움미술관은 오는 6월 28일까지 티노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 '티노 세갈'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은 '전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회화나 조각 같은 물질 대신, 인간의 몸과 말, 관계만으로 구성된 작업들이 미술관 전체를 점유한다.

세갈은 이를 '구성된 상황'이라 일컫는다. '해석자(Interpreters)'에 의해 실현되는 작품들은 관람객들이 그들과 직접 조우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이번 전시는 25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입구, 로비, 전시장, 야외 정원까지 총 8개의 작품 상황이 이어지며, 일부 작품은 일정에 따라 순환한다.

전시의 대표작 '키스'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들이 둘러싼 공간에서 '해석자'라고 불리는 무용수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천천히 움직인다. 리움미술관은 이 작품을 위해 실제 커플인 무용수들을 공개 모집했다.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을 환기하는 이 퍼포먼스는 청동으로 굳어진 과거의 조각과 현재 살아 움직이는 신체를 대비시킨다. 정지된 형상과 흐르는 시간, 두 개의 조각이 충돌한다.

로비에서도 이색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관람객들 사이에 있던 해석자들이 조용히 다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누가 작품이고 누가 관람객인지 경계는 흐려진다.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어떤 이는 질문을 던진 뒤 사라진다. 전시는 더 이상 '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계가 발생하는 장'이 된다.

중앙 전시장에서는 바이올린 연주, 노래, 자전거 묘기, 축구 동작이 뒤섞인다. 느슨하게 연결된 움직임과 아카펠라가 만들어내는 낯선 리듬은 일종의 기이한 합창처럼 공간을 채운다.

정원으로 나가면 한 해석자가 관객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 노르웨이 가수 모튼 하켓의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열창하는 장면은 공연과 일상의 경계를 다시 흐린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의 사진은 사용할 수 없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를 평생 화두로 삼아온 세갈은 사진·영상·도록을 일절 남기지 않는다.

오로지 전시 현장에서 보고 느낀 기억만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어한다. 마치 오래전 춤과 이야기·노래가 구전으로 전해지듯 말이다.

이날 세갈은 "어린 아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 책을 쥐여주기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듯, 몸으로 지식을 전파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수단"이라며 "극장보다 전시 공간이 관람객과 상호작용하기 더 쉬운 장소다. 예술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리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대해 "끊임없는 디지털 기록을 추구하는 현대적 충동에 저항하는 세갈은 관람객이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내려놓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기를 권한다"며 "그의 예술적 실천은 복제 가능한 기록보다 직접 경험하는 기억을 우선시하는 '탈생산(de-production)'을 지향한다"고 평했다.

이어 "전통적인 보존의 장소를 넘어 다양한 연결과 살아있는 만남을 바탕으로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며 관객과 작품, 미술관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 런던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세갈은 경제학과 무용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가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였다. 당시 본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무제'는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그에게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안긴 바 있다. 기록조차 거부한 채 오직 찰나의 '사건'과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그의 방식은 현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