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의 종착역은 파멸임에도…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파이낸셜뉴스
2026.03.07 10:00
수정 : 2026.03.07 10:00기사원문
[톨스토이 소설 원작으로 한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2018년 초연·2019년 재연 이후 7년 만에 세 번째 시즌 개막
화려한 볼거리와 다채로운 음악으로 무장한 '종합예술'
안나 카레니나의 열정적인 사랑, 그 비극적 결말이 남긴 것
[파이낸셜뉴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도 인용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여기서 탄생했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자, 방대한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를 핵심적으로 압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위선과 욕망이 교차하던 19세기, 그 견고한 벽을 깨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1700여쪽에 달하는 원작의 방대한 내용 중에서도 주인공인 안나와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의 사랑에 집중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후반 제정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위선과 욕망이 교차하던 귀족 사회로 고관대작 카레닌과 결혼한 안나가 오빠 스티바를 만나러 온 무도회장에서 브론스키와 만나며 사랑과 비극이 동시에 시작된다.
무도회에 등장한 안나에게 첫눈에 반한 브론스키가, 당초 청혼하기로 약속했던 키티를 버리고 안나를 선택하는 순간 객석에서는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기자의 옆자리에서 공연을 보던 나이 지긋한 노부부는 어느새 흡사 주말 드라마를 보듯 무대에 몰입해 있었다. 둘의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부부의 입에서는 한층 원색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화려한 무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인터미션을 포함해 150분이라는 길지 않은 공연시간 때문에 불륜이라는 형태로 완성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나온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고위 관료의 아내로 안정적인 삶을 살던 안나가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사랑에 눈먼 여인의 단순한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사랑은 가부장적이고 위선적인 당시 제정 러시아 사회 시스템에 대한 개인의 반역이자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초대형 LED와 거대한 기차…무대 위에 펼쳐진 광활한 러시아
극은 스스로 운명의 궤도를 이탈한 여인이 겪게 되는 환희와 불안, 그리고 파멸의 과정을 거침없이 쫓아간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무대는 이 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초대형 LED 스크린은 눈 덮인 숲부터 화려한 무도회장, 황금빛 밀밭까지 황량하면서도 매혹적인 러시아의 풍경을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놓는다. 특히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거대한 기차는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뿐만 아니라 실제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하는 앙상블들의 스케이팅 퍼포먼스와 200여 벌에 달하는 고풍스러운 의상들은 오페라와 발레, 스케이팅 등 러시아의 대표적인 예술 장르가 결합한 종합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화려하게, 다채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화려한 무대 연출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면, 클래식과 록,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장르를 어우르는 다채로운 넘버들은 귀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다. 특히 2막의 하이라이트인 패티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이여'가 선사하는 에너지는 압도적이다. 19세기 전설적인 소프라노 ‘아델리나 패티’를 모티브로 한 패티(한경미, 강혜정 분)가 무대 위에서 영원한 사랑을 찬양하는 동안, 사교계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채 객석에 홀로 앉아있는 안나의 비극적인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품의 타이틀이자, 150분 동안 감정의 밑바닥까지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 역에는 회차 독식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던 옥주현을 포함해 김소향, 이지혜가 트리플 캐스팅됐다. 안나의 삶을 뒤흔든 매력적인 장교 알렉세이 브론스키 역에는 윤형렬, 문유강, 정승원이,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 역에는 이건명, 민영기가 맡아 열연한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요즘 어떤 공연이 볼 만하지?" 공연 덕후 기자가 매주 주말, 공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관객들을 위해, 기자가 직접 보고 엄선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채워줄 즐거운 문화생활 꿀팁, [주말엔 공연 한 잔]과 함께 하세요.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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