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원, 자넨 미혼이니까 야근 좀 해... 이대리는 '유치원 픽업' 하러 갔잖아"

파이낸셜뉴스       2026.03.07 09:08   수정 : 2026.03.07 17:30기사원문
"내 워라밸은 누가 챙기나"… '합법적 4시 퇴근'이 부른 사내 갈등
대체 인력 대신 '업무 쪼개기'… 공식 통계가 증명한 역차별의 민낯
맹목적 희생 강요는 끝… '동료 보상금' 등 제도적 청구서 쥘 때



[파이낸셜뉴스] "부장님, 다음 주부터 두 달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하겠습니다.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오후 4시에 퇴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3월 첫째 주, 영업팀 김 부장(49)은 이 대리(34)의 면담 요청에 결국 올 것이 왔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사팀에는 이미 법적 권리라는 명분으로 서류가 넘어간 상태였다.

이 대리가 일찍 자리를 비우면서 발생하는 남은 고객사 관리와 오후 늦게 떨어지는 긴급 업무는 고스란히 김 부장과 미혼인 최 사원(28)의 몫이 되었다.

대한민국 오피스의 3월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새 학기를 맞아 육아휴직이나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활용하는 기혼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둘러싼 사내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갈등의 양측 입장은 팽팽하게 맞선다. 워킹대디인 이 대리는 올해 만 5세(한국 나이로는 7세)가 되어 유치원에 처음 입학한 아이의 적응 기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그는 국가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장려하는 합법적인 제도를 활용하는 것조차 개인의 이기심으로 치부하는 사내 분위기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 부장과 미혼 동료들의 불만도 단순한 몽니가 아니다. 제도의 취지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동료의 빈자리로 인해 파생되는 업무 과중을 오롯이 남은 직원들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린다.

"누군가의 워라밸을 지켜주기 위해 누군가의 워라밸이 박살 나는 구조"라는 최 사원의 자조 섞인 푸념은 현재 직장 내 역차별 논란의 핵심을 정확히 관통한다.





이는 일부 기업만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공식 통계가 증명하는 서늘한 현실이다. 고용노동부의 의뢰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및 단축근무 등에 따른 업무 공백을 '남은 인력끼리 나눠서 해결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41.1%에 달했다. 대체 인력을 새로 채용한다는 응답 비율을 압도하는 수치다.

또한, 근로자들이 이러한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35.9%)'이 1위로 꼽혔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훌륭한 제도가, 정작 노동 현장에서는 근로자들끼리의 '독박 업무' 전가와 세대 간의 노노 갈등으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업무 공백 해결의 최우선 방안은 대체 인력 채용이다. 하지만 육아기 단축근무의 경우, 짧은 시간만 일할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결국 부서원들이 업무를 나눠서 떠안게 되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 관계자는 "직원이 단축근무를 신청하면 회사는 마땅히 대체 인력을 투입하거나 남은 직원들에게 합당한 금전적 보상을 제공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추가 비용 발생을 꺼려 기존 직원들에게 업무를 쪼개어 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 역시 제도의 겉보기 사용률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의 대체 인력 채용 지원금을 대폭 현실화하고, 남은 직원들에게 지급할 '업무 대행 수당'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해야만 직장 내 파열음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직장 내 갈등을 막기 위해 최근에는 '동료 보상'을 지원하는 제도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6개월 이상 육아휴직자가 속한 팀의 팀원에게 1인당 최대 50만 원을 지급하는 '육아휴직 서포트 지원금' ' 제도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휴직에 따른 다른 팀원들의 업무 부담을 금전적으로 덜어주어 눈치 보지 않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국가의 저출산 대책과 열악한 현장 상황 사이에서, 전문가들과 시장은 무작정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합당한 '보상 체계' 마련이 역차별 논란을 잠재울 해법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4시에 쫓기듯 퇴근하는 뒷모습과 남겨진 서류 더미 사이, 이제는 기업과 정부가 확실한 청구서를 짊어져야 할 때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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