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 코트 당근에서 샀는데… 애 입학 가방이 80만 원이라고?"

파이낸셜뉴스       2026.03.08 11:09   수정 : 2026.03.08 11:42기사원문
엄마 아빠는 중고나라, 아이는 백화점 VIP… 봄철 영수증이 증명한 '텐포켓'의 역설





[파이낸셜뉴스] "여보,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애한테 80만 원짜리 명품 가방? 옷이랑 신발까지 300만 원을 쓰자고?"

2025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예비 학부모의 사연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외동딸에게 80만 원짜리 명품 가방 등 총 300만 원의 입학 선물을 하겠다는 아내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남편의 토로였다.

누리꾼들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허영심"이라며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아내의 항변에도 뼈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애들한테 저 정도가 요즘 기본이야"라는 말이다.

이 사연은 단순한 온라인 괴담이 아니다. 3월의 첫 주말, 대한민국 유통가의 영수증은 이 논란이 지극히 현실적인 모순임을 증명해 내고 있다. 성인 의류와 잡화 매출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프리미엄 아동복과 고가의 신학기 용품 매장은 연일 북새통이다.

본지가 분석한 유통 데이터는 초저출산 시대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소비 구조, 이른바 'VIB(Very Important Baby)' 현상의 절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불황의 그림자는 유통가 전체를 덮쳤지만, 유독 '키즈 럭셔리' 시장만은 무풍지대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유아동복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 8410억 원에서 2024년 2조 5,390억 원으로 38%가량 폭풍 성장했다. 같은 기간 아동 인구가 10% 가까이 줄어든 것과 완벽히 대조된다.

특히 백화점 3사의 '럭셔리 아동' 장르 매출은 2023년과 2024년 모두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하며 나홀로 성장세를 유지했다. 과거 10만 원대면 충분했던 초등학생 책가방은 이제 앞선 사연 속 아내의 말처럼 30~80만 원대를 훌쩍 넘어 명품 라인까지 주력이 되었다.

"가방 하나에 무슨 수십만 원이냐"는 남편의 탄식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가 됐다. 실제 현장에서는 고가 인기 모델의 품절 대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고가 키즈 라인의 흥행 이면에는 '텐포켓'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선 사연의 부부 역시 처가댁의 전폭적인 지원과 명품 브랜드 책상 선물을 받고 있었다. 이처럼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부모, 조부모, 이모, 삼촌 등 온 가족의 지갑 10개가 열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실제로 프리미엄 아동 용품 시장에서는 부모 외에도 5060세대(조부모)와 구매력 있는 미혼 2030세대(이모, 삼촌)의 결제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출생아 수가 0.7명대 밑으로 곤두박질친 시대, 아이 한 명에게 쏠리는 금전적 집중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이는 곧 프리미엄 시장에서 '가격 저항선'의 붕괴를 의미한다.

아이의 영수증이 화려해질수록, 부모의 영수증은 더욱 초라해진다. 고물가 속에서 국내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의 트렌드를 보면 3040 세대의 '남성 아우터', '여성 구두', '미개봉 화장품' 등 성인용 패션 및 뷰티 카테고리의 거래가 쉼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의 치장 비용을 극한으로 통제하여 확보한 현금이, 자녀의 '기죽지 않을 권리'를 구매하는 데 고스란히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봄철 영수증은 단순한 물가 상승의 결과물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자발적 희생'과 텐포켓의 '과시욕'이 결합된 대한민국 특유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아이의 어깨에 메워진 수십만 원짜리 명품 가방은 사랑의 무게일까, 아니면 어른들이 만들어낸 허영의 무게일까.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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