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는 없었다! 1조 몸값 오타니 앞에서도 당당했던 류지현호, 졌지만 큰 가능성 보였다

파이낸셜뉴스       2026.03.07 22:58   수정 : 2026.03.07 23:01기사원문
참사의 악몽 지웠다… 오타니·스즈키 대포에도 무너지지 않은 태극전사
도쿄돔 침묵시킨 김혜성의 '기적의 아치'… 세계 최강 마운드 맹폭
피 말렸던 7회 승부처와 8회 이정후의 전력 질주… 마지막까지 타오른 집념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았던 한일전… 이제 모든 시선은 운명의 대만전으로



[파이낸셜뉴스] 비록 스코어보드의 결과는 패배였지만, 고개 숙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도쿄돔의 밤하늘 아래,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전사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야구 경기를 넘어선 숭고한 투혼이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숙적' 일본과 경기 후반까지 가는 팽팽한 혈투 끝에 6-8로 석패했다.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 승리 이후 프로 선수들이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1무 11패라는 뼈아픈 열세가 이어졌지만, 적어도 이날 우리가 목격한 경기는 무기력한 참사가 아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위대한 명승부였다.



출발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하고 통쾌했다. 1회초 선두 타자 김도영이 일본의 메이저리거 선발 기쿠치 유세이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때려내며 포문을 열었고, 저마이 존스의 중전 안타와 이정후의 적시타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2사 1, 2루 찬스에서는 문보경이 좌중간을 시원하게 가르는 타구로 순식간에 3-0의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타선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1회말 오타니 쇼헤이의 볼넷에 이은 스즈키 세이야의 우월 투런포가 터졌고, 3회말에는 오타니의 동점 솔로포, 스즈키의 연타석 홈런, 요시다 마사타카의 연속 타자 홈런까지 폭발했다. 우리 선발 고영표가 2⅔이닝 동안 홈런 3방을 헌납하며 4실점 한 순간, 도쿄돔을 가득 채운 5만 관중의 함성은 절정에 달했고 스코어는 5-3으로 뒤집혔다.

지난 2023년 WBC에서 선취 3득점 후 4-13으로 무참히 패배했던 콜드게임 참사의 악몽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2026년의 류지현호는 과거의 나약했던 대표팀이 아니었다. 무너질 듯했던 벼랑 끝에서 한국 야구 특유의 끈질긴 근성이 살아났다. 4회초 김주원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며 불씨를 살리자, 김혜성이 일본의 두 번째 투수 이토 히로미의 공을 완벽하게 걷어 올려 우중간 펜스를 훌쩍 넘기는 기적 같은 동점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도쿄돔을 일순간 도서관으로 만들어버린,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한 방이었다.

이후 양 팀의 불펜진이 총동원되며 7회초까지 5-5의 숨 막히는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오타니를 필두로 한 세계 최강의 타선을 상대로 우리 투수진은 몸을 던져가며 마운드를 지켜냈다.

승패의 여신이 야속하게도 일본을 향해 미소 지은 것은 운명의 7회말이었다. 박영현이 선두 타자 마키 슈고에게 볼넷을 내준 뒤, 2사 3루의 절체절명 위기에서 벤치는 오타니를 고의 사구로 거르는 고육지책을 택했다.

하지만 좌타자를 잡기 위해 구원 등판한 김영규가 곤도 겐스케에게 볼넷, 스즈키에게 뼈아픈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리드를 뺏겼고, 결국 요시다에게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으며 스코어는 5-8로 벌어졌다. 피 말리는 중압감 속에서 제구가 흔들린 탓에 내준 점수라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태극전사들의 방망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차갑게 식지 않았다. 8회초, 이정후가 사력을 다한 전력 질주로 2루타를 만들어내며 다시 한번 추격의 선봉에 섰다. 2사 후 문보경의 볼넷과 김주원의 끈질긴 중전 적시타가 터지며 1점을 만회, 스코어를 6-8까지 좁혔다.

2사 만루의 기회가 이어졌으나 김혜성이 삼진으로 돌아서며 아쉽게 역전에는 실패했다. 존스와 이정후가 멀티히트를 기록하고, 문보경과 김혜성이 각각 2타점을 쓸어 담으며 일본 마운드를 끝까지 괴롭혔다.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일본 군단을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경기 후반까지 대등한 화력전을 펼친 것은, 패배 속에서도 분명하게 빛난 우리 타선의 진정한 저력이었다.



1승 1패. 징크스를 깨지는 못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9이닝이었다. 선수들의 눈빛에는 좌절 대신 '할 수 있다'는 뜨거운 독기가 서렸다. 이제 감동적인 명승부의 여운은 뒤로하고, 시선은 8일 정오에 열리는 대만과의 조별리그 3차전으로 향한다.

1승 2패로 벼랑 끝에 몰린 대만은 8강 진출을 위해 한국전에 모든 것을 걸고 덤벼들 전망이다.
한국은 이제 대만과 호주를 모두 꺾어야 자력 8강진출이 가능하다. 사실, 일본전 패배는 어느정도 류지현 감독의 계산에 들어가 있었던 부분이다.

어쩌면 한국 야구의 진정한 WBC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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