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둘이서 3판 2승제 하든가"… 미·일 결승 강제하는 WBC의 촌극
파이낸셜뉴스
2026.03.13 20:00
수정 : 2026.03.13 20:52기사원문
성적보다 시장성이 먼저? 미국·일본에만 주어지는 WBC의 기이한 '특혜 조항'
세계화 외치면서 '그들만의 리그'… 스포츠 공정성 역행하는 WBC
[파이낸셜뉴스] 스포츠가 전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출발선이 같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전력이 뒤처지는 다윗이라도, 룰 안에서는 골리앗과 평등하게 땀을 흘린다. 축구의 월드컵이 위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17년 만에 8강 토너먼트가 열리는 마이애미 현지의 열기는 뜨겁지만, 그 이면에 깔린 조직위원회(WBCI)의 대진 규정은 차갑고 기괴하다. 올해 WBC는 8강부터 단판 승부로 진행된다. 보통 국제대회라면 'C조 1위는 D조 2위와 맞붙고, 이들은 대진표의 어느 위치로 간다'는 명확한 사전 규정이 존재한다. 조별리그에서 피 튀기게 순위 싸움을 하는 이유도 더 유리한 대진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올해 WBC 대진표에는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전제 조건'이 숨어 있다. 바로 미국과 일본이 8강에 진출할 경우, 두 나라는 조별리그 성적(순위)과 무관하게 무조건 8강 대진표의 2번과 4번 자리에 고정 배정된다는 것이다. 이 전제 조건이 붙은 나라는 참가 20개국 중 오직 미국과 일본뿐이다.
이 교묘한 '자리 지정'의 결과는 명확하다. 미국과 일본은 8강, 4강에서 절대 서로를 만날 수 없다. 두 나라가 8강에 오르기만 하면 무조건 결승전에 가야만 맞붙도록 아예 대진표를 '맞춤형'으로 조작해 놓은 것이다. 조별리그 성적에 따라 4강에서 만나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조직위는 규정을 앞세워 두 팀을 반대편 브래킷으로 갈라놓는다. 지난 2023년 대회에서도 이 황당한 조건이 가동됐고, 결국 조직위가 그토록 원하던 '미국-일본 결승전' 흥행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대회를 주도하고, 일본의 거대 기업들이 글로벌 스폰서로 돈을 대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특혜는 이해하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다른 참가국들의 땀방울을 모욕하는 처사다.
한국 대표팀은 호주전에서 2실점 이내로 막기 위해 투수들이 팔꿈치를 바쳐가며 사투를 벌였고, 도미니카공화국은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혈투 끝에 8강에 올라왔다.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나라들은 혹여나 4강에 가더라도 '미·일 결승전'을 완성하기 위한 들러리 취급을 받을 판이다. 이런 식의 불공정한 흥행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20개국을 부를 것 없이 미국과 일본 두 나라만 모여서 '3판 2승제' 친선경기를 치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출발선이 다른 대회, 특정 국가를 결승까지 모셔가는 대진표. 전 세계 어느 권위 있는 국제대회도 이런 삼류 코미디 같은 규정을 두진 않는다. WBC가 진정한 야구 최고 권위의 대회로 인정받고 싶다면, 노골적인 자본의 논리와 꼼수부터 거둬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그 어떤 감동도 피어날 수 없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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