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폭발 걱정 끝? '샌드위치 막'이 그린수소 시대 앞당긴다
파이낸셜뉴스
2026.03.16 05:56
수정 : 2026.03.16 05:56기사원문
<14>고려대·KIST 연구진, 차세대 멤브레인 개발
뼈대 세우고 기능성 막 입힌 다층 구조로 설계
10배 더 안전하고 1670시간 버티면서 수새 생산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다.
■이 기술, 어디에 쓰일까?
이 성과는 탄소 배출 없는 '그린수소' 시대를 앞당기는 핵심 엔진이 된다.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만들 때 가장 큰 고민은 폭발 위험이었다. 이번에 개발한 부품은 수소와 산소가 섞이는 것을 원천 차단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앞으로 수소 충전소나 친환경 발전소에서 더 저렴하고 안전하게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널리 쓰일 전망이다. 특히 값비싼 귀금속 촉매 대신 저렴한 소재를 사용해도 높은 성능을 유지할 수 있어 수소 경제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세 층을 하나로 묶은 '무용매' 공법
연구팀은 기존 알칼라인 수전해에서 쓰던 튼튼한 '지르폰(Zirfon)' 분리막을 뼈대로 삼았다. 하지만 지르폰은 구멍이 많아 가스가 쉽게 새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지르폰 양옆에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고분자 막(p-PBI, PDTP)을 덧댔다. 한쪽은 강한 알칼리 전해질에서도 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다른 쪽은 이온이 고속도로를 달리듯 빠르게 이동하게 돕는다.
여기서 연구팀은 독특한 실험 방식을 도입했다. 화학 접착제를 쓰면 이온 흐름이 방해받기 때문에, 오직 열과 압력만 이용하는 '무용매 핫프레싱' 공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수준의 두께를 유지하면서도, 세 개의 층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완벽하게 결합한 샌드위치 구조가 탄생했다.
■1670시간의 놀라운 기록
실험 데이터는 이 샌드위치 막의 성능을 확실히 증명했다. 가장 큰 성과는 가스 차단 능력이다. 기존 지르폰 막과 비교했을 때 수소가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는 양(가스 투과도)이 10배 이상 줄어들었다. 가스가 섞여 불이 붙을 위험을 물리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성능 수치 또한 압도적이다. 섭씨 90도의 뜨거운 환경에서 2.0V 전압을 가했을 때, 평방센티미터당 3926mA의 높은 전류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적은 에너지로도 많은 양의 수소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구성 실험에서는 무려 167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작동하면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함께 상자를 연 사람들
이번 연구는 고려대 유승호 교수 연구팀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소영 박사 연구팀이 손을 잡고 이뤄낸 결실이다. 최영빈 연구원과 이주연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해 실험을 주도했으며, 한양대 이영무 교수팀도 함께 힘을 보탰다. 이 혁신적인 연구 결과는 재료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컴포지트 앤 하이브리드 머티리얼즈(Advanced Composites and Hybrid Materials)'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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