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앱, 쪼개진 데이터

파이낸셜뉴스       2026.03.18 18:32   수정 : 2026.03.18 18:51기사원문
당국 ‘마이데이터2.0’ 추진안 발표
하나의 앱에 여러 계열사 들어와도
데이터는 각자의 방에만 갇혀 있어
최신식 스마트빌딩 지어놓고서
층마다 엘리베이터 막아놓은 꼴
동일 계열사 간 정보공유 길터줘야

마이데이터는 한국 금융제도의 자랑이다. 개인이 흩어진 금융정보의 주인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받게 하겠다는 발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야심차게 제도화됐다.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면서도 데이터 활용의 문을 연 나라는 많지 않았고, 한국은 그 어려운 길을 한번에 건너려는 혁신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제도 도입 4년이 지난 지금, 마이데이터가 금융산업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사업자들은 여전히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이용자 체감도 기대만큼 높지 않다.

최근 금융당국이 '마이데이터 2.0' 추진 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데이터 범위를 넓히고, 활용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하지만 마이데이터의 미래가 밝다고 단정하기에는 여전히 불안요소가 많다. 제도의 외연을 넓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이데이터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구조적 병목'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이 바로 동일 금융그룹 내 계열사 간 정보공유 문제다.

금융서비스의 중심은 이미 오프라인 창구를 떠나 온라인으로 이동했고, 이제는 '원앱(one app)' 구조가 대세가 됐다. 하나의 앱에서 송금, 대출, 투자, 보험, 자산관리까지 해결하는 것이 이용자들의 기본 기대가 됐다. 토스가 이 흐름을 가장 앞서 이끌었고 삼성의 모니모, 신한의 슈퍼 쏠, KB의 스타뱅킹 등 주요 금융그룹 앱들도 뒤따라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원앱 전략이 단순히 화면을 하나로 합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짜 원앱은 '기능의 통합'이 아니라 '데이터의 통합'에서 출발한다. 이용자의 소비패턴, 자산구조, 투자 성향, 보험 보장 현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맞춤형 금융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행 마이데이터 제도하에서는 이 가장 중요한 전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 가지 방법은 모든 계열사가 각각 마이데이터 사업자 인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복투자와 비용만 키우는 비효율적 선택이다.

더 큰 문제는 설령 모든 계열사가 인가를 받더라도 정보의 '교차 이용'이 허용되지 않으면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A계열사에 제공한 마이데이터 정보는 A계열사만 쓸 수 있고, 같은 그룹의 B계열사는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 하나의 앱 안에 여러 계열사가 들어와 있어도, 데이터는 각자의 방에 따로 갇혀 있는 셈이다.

이 상황은 마치 최신식 스마트빌딩을 지어 놓고, 층마다 엘리베이터를 막아둔 것과 같다. 외관은 하나의 건물인데, 사람들은 매번 밖으로 나와 다시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이용자는 분명 같은 금융그룹의 서비스를 쓰고 있는데, 데이터는 서로 말을 걸지 못한다. 이러니 원앱의 편의와 시너지가 제대로 나타날 리 없다.

이 구조에서는 확장성이 막힌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앱을 쓰고 있지만 서비스 경험은 여전히 단절돼 있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데이터 기반 혁신을 시도할 유인이 약해진다. 마이데이터가 '연결의 제도'가 아니라 '분절의 제도'로 작동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그 결과 마이데이터는 비용만 들고 수익은 나지 않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제도에 대한 시장의 기대도 점점 낮아진다.

동일 금융그룹 내 계열사 간 마이데이터 정보공유를 제도적으로 허용하자는 주장은 결코 이용자 보호를 약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전제는 명확하다. 이용자의 명시적 동의, 목적 제한, 투명한 활용 그리고 책임 있는 관리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룹 내 정보공유는 이용자에게 더 정교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불필요한 중복 제공과 오판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는 아직 완성형 제도가 아니다. 제도를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소극적 질문에서 벗어나 '어떻게 해야 제대로 쓰이게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이용자의 통제권과 보호라는 대원칙을 분명히 전제로 하되, 동일계열사 간 정보공유라는 엘리베이터를 과감히 개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의 앱은 진짜 하나의 금융 경험이 되고, 마이데이터는 '야심찬 제도'가 아니라 '작동하는 제도'로 완성될 수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마이데이터 2.0 역시 이름만 바뀐 채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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