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팔래치아에서 마러라고까지 — 이란 전쟁이 시험대에 올린 JD 밴스(미국읽기)
파이낸셜뉴스
2026.03.22 06:04
수정 : 2026.03.22 06:03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 2025년 2월 14일.
전날 밤 24세 아프간 망명 신청자가 뮌헨 광장에서 차로 군중을 덮쳐 2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친 직후였다. 그 핏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이튿날 아침,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취임 후 첫 유럽 방문으로 모두가 주목했다.
"유럽의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도, 중국도 아니다. 내부로부터의 위기다."
"유럽이 직면한 위기는, 우리가 함께 직면한 위기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자국 유권자들을 두려워해 달아난다면,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밴스는 포효했다. 유럽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현장에 있던 유럽 지도자들은 말을 잃었다. 연설이 끝난 후에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러나 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외신들은 "충격을 받은 듯한 분위기(stunned)", "유럽 지도자들을 향한 직설적 공격(blistering attack)"이라는 표현으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연설은 단순한 외교적 발언을 넘어, 미국이 동맹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자, 2028년 차기 권력 구도에서 밴스가 어떤 위치에 설 것인지를 미리 보여준 순간으로 평가된다. 밴스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였던 '신고립주의'를 천명한 자리였다.
#. 2026년 2월 28일.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마라라고 무도회장에서는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손님들이 샴페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황금빛 연회장 저편, 겹겹이 쳐진 검은 커튼 뒤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CIA 국장,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군중의 눈을 피해 하나씩 조용히 들어왔다. 중동 지도가 이젤에 세워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먼저 무도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라고 외치며 '갓 블레스 더 USA'에 맞춰 잠깐 춤을 추고는 "일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수지 와일스 대통령 비서실장은 미군의 이란 공격을 지켜보며 중동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밴스 부통령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보안 전화 회선으로 참여하며, 행정부 내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의 가장 목소리 높은 회의론자 중 한 명인 툴시 개버드 DNI 국장 옆에 앉아 있었다. NBC는 "자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이 장면을 진단했다.
루비오는 곁에, 밴스는 혼자
"내 생각에 마르코는 역사상 최고의 국무장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내 의견이다. 다만 내가 그를 좋아해서 약간의 편견이 있을 수 있다."
"마르코는 부드러운 손길로 상대를 제압하지만 결국에는 결정적인 일격을 가한다."
"그는(밴스) 철학적으로 이란 공격에 나와 다른 입장이었다. 이란 작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나보다 열의가 없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이란 공격이 시작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장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1년 사이 상황이 바뀌었다. 연초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작전에서부터 루비오는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밴스 부통령은 마가(MAGA) 진영에서도 '신고립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그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공격을 지시하고 진두지휘할 때 밴스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공습 며칠 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도 말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한 종결 시점이나 목표도 없는 수년간의 전쟁에 이 나라가 휘말리는 것을 용납할 리 절대 없다."
CNN에 따르면 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을 때 가장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저항하지 않고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해외 전쟁 개입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었다.
밴스는 2023년 초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의 최고 외교정책?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부제는 '나는 그가 미국인들을 무모하게 해외 전투에 내보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2024년 그를 지지한다'였다.
밴스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성인 인생 전체가 미국을 현명하지 못한 전쟁에 내던진 대통령들에 의해 형성됐다."
"트럼프는 자신의 당과 심지어 자신의 행정부 내부로부터의 엄청난 압박에도 불구하고 4년 재임 기간 동안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낮은 기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트럼프의 전임자들과 그들이 맹목적으로 따랐던 외교정책 기득권의 매파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2024년 대선 유세 기간 중에는 "이란과의 전쟁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고도 말했다.
애팔래치아 소년의 탄생
밴스의 이 같은 '신고립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뿌리는 훨씬 오래된 개인사에 닿아 있다.
밴스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자서전 『힐빌리 엘레지: 한 가족과 문화의 위기에 대한 회고록』은 베스트셀러였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84년 오하이오주 미들타운. 켄터키 애팔래치아 산골에서 내려온 스코트-아이리시 이민자들이 공장을 따라 정착한 러스트벨트의 작은 도시였다. 밴스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약물 중독자였다. 약에 취한 채 차를 몰았고, 아이 앞에서 무너졌다.
그 혼돈 속에서 소년을 붙잡아 준 것은 외할머니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욕을 밥 먹듯 했고, 집 안 은식기 서랍에 장전된 권총을 숨겨 두었다. 손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밴스는 해병대에 입대했고, 이라크에 다녀왔고, 오하이오주립대와 예일 로스쿨을 거쳤다.
피터 틸, 그리고 운명의 강연
2011년 예일 로스쿨. 피터 틸이 강단에 섰다. 내용은 이랬다. "예일 같은 엘리트 학교의 학생들은 동료들과의 경쟁에만 몰두한 채, 진정한 가치를 창조하는 것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술적으로 정체됐고, 그 책임은 창조는 없이 명예만 쫓는 엘리트들에게 있다."
밴스는 나중에 이 강연을 "예일 로스쿨 시절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썼다. 이후 그는 법조인의 길 대신 벤처캐피털 업계로 방향을 틀었고, 틸과의 인연 속에서 실리콘밸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틸은 밴스를 자신의 벤처캐피털 회사 미스릴 캐피털에 영입했다. 『힐빌리 엘레지』에 추천사도 써줬다. 2022년 오하이오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15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단일 상원의원 선거 사상 최대 후원금이었다.
그의 시선이 워싱턴이 아닌 '미국 내부'로 향하게 된 계기는 이 시기에 형성됐다. 해외 전쟁보다 국내 공동체의 붕괴가 더 큰 위기라는 인식이었다. 이는 훗날 "미국은 끝없는 전쟁에 지쳐 있다"는 그의 일관된 메시지로 이어졌다.
틸은 밴스를 2021년 2월 마라라고로 데려가 트럼프에게 직접 소개했다. 밴스의 첫 번째 트럼프 면담이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러나 결과는 분명했다. 밴스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정치적 기획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실리콘밸리의 지갑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밴스는 2024년 6월 데이비드 색스, 차마스 팔리하피티야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트럼프 모금 행사를 직접 기획했다. 1인당 최대 30만 달러짜리 자리였고 총 1200만 달러가 걷혔다.
그리고 2024년 7월 15일, 트럼프가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발표하자 실리콘밸리는 폭발했다. 밴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직후, 암호화폐 억만장자 윙클보스 형제, 팔란티어의 조 론스데일, 세쿼이아 캐피털의 더그 리오네 등이 참여한 슈퍼팩 '아메리카 PAC'이 즉각 출범했다. 800만 달러 이상이 이미 모인 상태였다.
경제학자 새뮤얼 해먼드는 이렇게 진단했다. "실리콘밸리 우파를 하나로 묶는 이념이 있다면, 그것은 체제가 고장났다는 인식, 그리고 자신들이 더 나은 체제를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러스트벨트 소년과 기술 억만장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분노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의 교차점에서 JD 밴스라는 정치인이 탄생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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