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속 정의의 그림자
파이낸셜뉴스
2026.03.23 09:00
수정 : 2026.03.23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소년재판 법정에 앉아 있다 보면 세상이 얼마나 기묘한 방식으로 비틀려 있는지를 날것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형법 교과서에 등장하는 범죄의 구성요건은 동일하지만 그 조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소년들의 삶과 인식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그림자는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건강을 강요당한 피해자
동성애자인 한 비행소년이 30대 직장인 남성을 채팅을 통해 만나 유사성행위를 한 뒤 그 사실을 빌미로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성범죄 관련 협박·공갈 사건의 전개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소년이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피해자에게 스쿼트 300개, 팔굽혀펴기 200개, 윗몸일으키기 100개를 10분 내에 완료하는 장면을 촬영해 매일 전송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서로 주고받은 채팅 내역 등을 피해자의 직장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자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 속에서 소년의 요구를 따른 끝에 이른바 ‘몸짱’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 육체적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더 이상 이 아이에게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다‘며 비행소년을 고소했다. 강요죄 성립에는 의문이 없었다. 다만 이 사건은 나에게 낯선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의 인격과 자유는 명백히 침해되었지만 그 결과 신체적 건강은 오히려 증진된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소년사건을 다루다 보면 법적 판단과 별개로 인간에 대한 통찰을 요구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 사건 역시 ‘강요’라는 단어의 무게가 결국 육체가 아닌 ‘의지’와 ‘존엄’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했다.
‘오피깨기’와 계산된 냉정
물론 모든 사건이 이처럼 아이러니한 결말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훨씬 더 차갑고 계산적인 범죄 유형도 자리하고 있다. 일명 ‘오피깨기’라 불리는 범행이 그중 하나다. 오피스텔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성매매 구조를 역이용하여 비행소년들이 성매수남으로 위장해 오피스텔에 들어간 뒤 성매매 여성을 협박해 현금을 갈취하는 수법이다.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 피해 여성이 다액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 신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치밀하게 계산한 범행이다. 소년사법이 보호와 교화를 지향하는 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범죄 구조 속에서 치밀하게 약자를 공략하는 이러한 유형의 범죄가 주는 위기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의의 사도를 자처한 강도상해
또 다른 유형의 사건은 성매매를 가장한 강도상해 범행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소년들이 자신의 범죄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사건의 구조는 이렇다. 여자 비행소년이 성매매 여성으로 가장해 성매수남과 연락을 취해 모텔에서 만난다. 성관계를 가질 듯 분위기를 만든 뒤 성매수남이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대기 중인 남자 비행소년들에게 연락한다. 이들은 모텔로 쳐들어와 “이 아이는 내 여동생인데 미성년자이다. 당신이 미성년자와 성매매하려 한 것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고, 협박이 먹히지 않으면 각목 등으로 성매수남을 폭행한다. 결국 대부분의 성매수남들은 자신의 범법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 가지고 있던 현금을 건네거나 현금인출기까지 가서 소년들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뽑아 주게 된다.
이러한 유형의 범행은 사전에 치밀하게 역할이 분담되고, 물리력이 동원되며, 피해 발생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실제로 범행 현장을 목격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던 모텔 여주인이 비행 소년들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행에 연루된 소년들 중 상당수는 ‘어차피 성매매하려는 나쁜 어른들을 혼내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자신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정의의 사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범죄자라는 사실이 그 범행을 정당화해 주지 못한다는 점은 형법의 기본 원리이자 자력 구제를 금하고 있는 사회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전제다. 소년 법정에서 이와 비슷한 인식을 마주할 때면 단순히 처분 수위를 정하는 것 이상으로 ‘정의’라는 단어가 이 아이들의 내면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두 범죄집단이 마주했을 때
앞서 말한 두 유형의 범죄 집단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도 있었다. 성매매 여성으로 가장한 비행소년 집단과 성매수남으로 가장해 이른바 ‘오피깨기’를 하던 집단이 동일한 공간에서 서로를 표적으로 삼게 된 것이다. 성매수남을 가장한 비행소년은 평소처럼 성매매 여성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성매수남과 달리 상대가 자신을 협박하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성매매 여성’ 역할의 비행소년은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피한 뒤 근처에서 대기하던 남자 비행소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후 성매매 여성 측 일당이 집결했고 이를 본 성매수남 측 역시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렸음을 깨닫고 자신들을 도와줄 인원을 추가로 호출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집단은 마치 조직폭력배 행동대가 맞붙기 직전과 같은 긴장된 대치 상황을 연출했다. 결국 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한 성매수남 측 일당이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도주했고, 이를 쫓아간 성매매 여성 측 일당이 각목을 들고 차량을 부수려는 기세를 보이자 성매수남 측은 살기 위해 자신들의 범행이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날 경찰의 개입으로 양측 모두 검거되었고 주범들은 형사재판을 거쳐 중형을 선고받았다.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일부 소년들은 소년재판에 넘겨졌다. 소년 재판 당시 그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설명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선배들이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돈을 준다고 했어요,” “성매매하는 나쁜 어른을 혼내주는 일이니까 설령 적발돼도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나 강도상해 사건은 소년사건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범죄에 해당하고 실제로 이런 사건에 연루될 경우 소년원 송치가 불가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계를 보는 시선
소년재판을 오래 담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또렷해진 사실이 있다. 소년비행은 개별 소년의 일탈이면서 동시에 그 소년을 둘러싼 관계와 환경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비행의 심각성, 재범률을 가르는 요인을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부모의 양육 태도, 가족 간 의사소통, 보호자의 보호 의지와 능력, 경제적 여건, 가출 경험 등이 유의미한 변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년법이 ‘반사회성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통해 건전한 성장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년 법정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는 평소에는 모범생으로 불리던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성실히 학교를 다니고, 성적도 나쁘지 않으며, 담임교사도 “이 아이가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그 아이들 역시 특정 시기에는 부모보다 선배, 친구, 온라인 커뮤니티의 말에 더 깊이 이끌리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은,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못지않게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 달라는 것이다. 잘못된 준법의식은 어느 날 거창한 이념에서 비롯되지 않고, 대부분은 ‘이건 별거 아닌 일’이라는 말 한마디, ‘어른들이 더 나쁘다’는 왜곡된 논리, ‘우리가 오히려 정의롭다’는 자기합리화에서 조용히 자라나기 시작한다.
소년재판은 결국 처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의 선택이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강력범죄의 선을 넘어가기 전에 가정과 학교, 공동체가 어디까지 책임 있게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