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시장적 담합에 선진국식 ‘철퇴’
파이낸셜뉴스
2026.03.25 18:30
수정 : 2026.03.25 21:12기사원문
이러한 이유로 어느 나라든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 우리 정부는 지난 2월부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경제적 혼란기는 담합이 발호하기 쉬운 환경이 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물류비 증가라는 명분을 핑계 삼아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행태가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데믹 당시 유럽연합(EU)에서는 물류난을 틈타 에탄올과 자동차 배터리 가격을 조작한 대규모 담합들이 적발된 바 있다.
최근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점검팀을 운영하며 민생과 직결된 담합과 불공정행위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설탕 카르텔에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반시장 행위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이어 밀가루, 전분당 등 기초 식품 분야의 조사도 속도감 있게 진행해 시장 깊숙이 암약하는 담합구조를 하나씩 타격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에 업계도 화답하기 시작했다. 담합이 적발된 설탕, 밀가루, 전분당 업체들이 공급가격을 적게는 3%에서 많게는 20.5%까지 인하했다. 이는 제과·제빵, 라면, 아이스크림 등 전방산업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시기에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 대신 소비자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우리 경제공동체가 한 단계 성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한편으로 담합에서 얻은 부당이득을 가격 인하로 소비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기업의 마땅한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원가 상승이라는 파고 뒤에 숨어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담합은 경제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시장 파괴행위와 다름없다. 그동안 일부 기업들은 위기 때 상생을 외치면서 정작 뒤에서는 경쟁을 봉쇄하고 가격을 담합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곤 했다. 담합으로 챙긴 부당이득이 경제적 제재(과징금)보다 큰 구조에서는 기회주의적 담합의 고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공정위가 담합 등에 부과되는 과징금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상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시장질서를 유린한 행위는 기업의 존립을 흔들 만큼 엄중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민생의 근간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담합 관행은 한국 시장의 품격을 저해한다. 반칙 없는 경쟁을 통해 혁신의 성과가 정당하게 보장되고, 그 혜택은 국민(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시장경제의 감시자'로서 공정하고 건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데 흔들림 없이 매진할 것이다.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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