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국가전략 자산이다
파이낸셜뉴스
2026.03.25 18:31
수정 : 2026.03.25 18:43기사원문
지난 19일 국내 철강 1, 2위 업체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노조가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여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주제도 노조 이슈가 아닌 '철강산업 붕괴 위기에 대한 대책 촉구'였다.
기자회견장은 제조업을 지키기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위기를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겪어 보지 못했던 단축근무와 휴업이 지속되며 수입이 반 토막 나고, 동료들은 떠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심장' 포항제철소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스위스다.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제조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특정 국가와 공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공급망은 위기상황에서 쉽게 붕괴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물류 차질을 넘어 사회 전체의 기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에서 저자 팀 민셜은 이렇게 지적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다른 누군가'가 물건을 대신 만들어줘도 좋다면, 그 '누군가'도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인프라, 숙련공, 공장, 공급망을 하룻밤 사이에 마법처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제조업에는 기업과 정부의 장기적인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제조업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제조업은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영역이 아니라 기술과 일자리, 그리고 국가의 자율성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이를 약화시키는 것은 단기적으론 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윌리 시 하버드대 교수는 '산업공유지'라는 개념을 통해 제조업의 본질적 가치를 설명한다. 이 개념의 핵심은 '제조업이 사라지면 단순히 생산기지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업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역량까지 붕괴된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국가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설계 능력, 공정 개선 능력, 숙련 인력, 협력업체 네트워크가 점차 약화된다. 결국 그 국가는 더 이상 해당 산업에서 혁신을 주도할 수 없게 된다.
이 개념은 최근 우리 제조업 위기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철강, 석유화학 같은 기간산업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 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협력업체, 지역경제, 숙련 노동력, 기술 축적이 함께 약화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철강은 자동차, 조선, 기계 등 거의 모든 제조업의 기초소재이기 때문에 철강 산업공유지가 붕괴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산업의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노조의 기자회견은 위기의 시작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변화의 경고음이다. 이 신호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제조업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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