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강-활명수를 만든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
파이낸셜뉴스
2026.03.27 10:11
수정 : 2026.03.27 10:35기사원문
일제강점기 독립운동하며 옥살이한 유일한 기업인
활명수를 중국에서 팔아 수익금을 독립운동에 지원
교육 분야에서도 기여한 민강의 48년 생애를 총정리
[파이낸셜뉴스] 1897년 9월 창업한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 제약사, 최초의 등록상표 및 등록 상품 출원이라는 4개 기록을 갖고 있다. 1910년 8월 한국 최초의 상표(商標)로 부채표를, 같은 해 12월엔 활명수 상표를 각각 등록했다. 동화약방을 공동창업해 48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회사를 경영했던 민강(1883~1931년) 선생의 일대기와 정신을 소개한 평전이 나왔다.
평전의 저자인 고진숙 작가는 “사료를 추적한 결과, 민강은 1909년 항일 비밀결사단체 대동청년단에 가입했고, 1919년엔 동화약방 분점을 개점해 ‘3.1만세운동’의 연락사무소로 활용했으며, 약방 본점은 임시정부 경성연통부 연락거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1910년대 국내 최고 기업인 동화약방을 운영한 민강은 부(富)를 축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활명수 판매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상당 부분 제공했다. 고 작가는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휴대해 현지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독립자금으로 활용할 정도로 지원해줬다”고 했다.
‘활명수’는 구한말 민강과 그의 아버지(민병호)가 공동 개발한 최초의 국산 신약(新藥)이다. 궁궐에서 쓰이던 소화불량 해소약과 양약을 섞어 만들었는데 급체와 토사곽란(吐瀉癨亂)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에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민강은 교육자로서도 사회에 이바지했다. 1907년 서울 서소문 인근 아이들을 위해 세워 운영했던 소의학교는 지금의 동성중·고교의 전신(前身)이다. 1918년 그가 설립에 참여한 조선약학교는 현재 서울대 약대로 이어져 한국 약학(藥學) 교육의 산실이 됐다.
기업인·독립운동가·교육자로서 1인3역을 하며 ‘불멸의 족적(足跡)’을 남긴 민강은 1963년 제약업계 기업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그의 묘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독립운동가 묘역에 안장돼 있다.
학계에선 이번 민강 평전 발간을 계기로 그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지희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는 “몸을 다쳐가며 기업 운영과 독립운동을 한 민강은 일제에 발각될 것을 염려해 평생 일기나 저작을 남기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분의 자세한 발자취를 담은 책이 나와 다행이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민강 선생의 삶과 실천은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며 “활명수 판매로 얻었던 이윤을 대부분 독립자금으로 전달한 민강의 정신은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ESG 경영, 지속가능발전의 기본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다”고 했다.
평전에는 ‘책 속의 책’ 형태로 1930년 서울 여학생 만세시위의 주역인 민금봉 선생의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민강의 친척으로 동화약방에 거주했던 민금봉은 이화여고보 재학 당시 80장의 태극기를 직접 제작·배포하며 독립만세 시위를 조직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그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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