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새판 짜려는 美… 亞·유럽과 ‘포스트 아브라함’ 연대

파이낸셜뉴스       2026.03.29 18:57   수정 : 2026.03.30 00:14기사원문
중동 '지경학적 정상화' 움직임
트럼프 1기 ‘아브라함 협정’ 영토 확장
카자흐·우즈벡 등 이스라엘과 협력 강화
이란 위협 느낀 사우디 등 중동국 이어
유럽 나토국들도 美 전략 동참 움직임
美, 중동 문제두고 韓에도 참여 압박
의회조사국 "역외 기여로 동맹 평가"

[파이낸셜뉴스] 중동의 지각판이 재편되고 있다. 지난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시킨 ‘아브라함 협정’은 이제 지역 협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번 중동 사태의 본질은 이란 정권의 교체 시도가 아니다.

저력을 지닌 페르시아의 문명적 자산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질서로 복귀하는 ‘지경학적 정상화’가 그 핵심이다. 이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던 중동 안정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아랍권 주역 국가들이 실리적 결단으로 대열에 합류하고, 나토(NATO)와 일본이 미국의 옆자리를 채우며 글로벌 안보 파트너십이 결집하는 모양새다. 아브라함 협정의 확장은 이란 국민의 잠재력을 억눌러온 신정 체제의 강고한 벽을 허무는 구심점이 되고있다. 중동 전체를 ‘예외의 땅’에서 ‘공존의 터전’으로 개조하려는 거대한 문명적 회귀의 서막이라는 관측이다.

■아브라함 협정의 전략적 변이, 봉쇄에서 ‘체제 개조’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을 내건 이 협정은 수천 년간 반목해온 이복형제인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공존과 번영'이라는 생존 전략을 향해 집결하는 역사적 변곡점이자 거대한 '중력의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외교와 투자의 연성 권력(Soft Power)으로 작동했다면, 현재는 이란의 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중동판 미사일 방어 체계(IAMD)’ 구축 등 하드 파워(Hard Power)의 결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를 안보와 경제를 결합한 '구조적 재편의 결정점(Determining Point)'으로 평가했다. 이란의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 최근 기이한 침묵을 지키는 배경에는 이 협정이 구축한 거대 포위망의 실질적 위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아브라함 협정은 압박과 결집을 넘어, 이란 신정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고 이란 국민의 문명적 잠재력을 회복시키려는 ‘국가 개조’의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동을 넘어 유라시아로, 중·러의 거점 잠식

트럼프 1기의 유산인 '아브라함 협정'은 이제 중동의 지평을 넘어 유라시아의 심장부인 중앙아시아로 거침없이 부상하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이슬람권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아브라함 협정 확장판'에 합류하는 양상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수십 년간 기득권을 유지해온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추진을 동시에 차단하는 결정적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 기술적·안보적 대안을 제시하며, 중·러의 배타적 영향권이었던 지역을 서방 중심의 가치 동맹으로 급속히 편입시키고 있다. 가장 놀라운 이변은 UAE, 바레인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등 '오일 머니' 주역들의 태도 변화다. 중동 주요국들이 이란의 근본적 변화를 겨냥한 거대 군사·전략 플랫폼에 합류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전 초기만 해도 보복을 우려하며 관망세를 유지하던 이들 국가들은, 이란의 핵 보유가 현실화될 경우 자신들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미국의 엄중한 현실 진단에 전격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아브라함 협정의 틀 안에서 이스라엘과의 비공식 안보 협력을 공식화하며, 미군에 실질적인 공군 기지 사용권과 정보 공유를 제공하는 핵심 주체로 급부상했다. 이는 이란의 대리 세력에 시달려온 중동국가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택한 '생존을 위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의 직접적 위협은 거리상 유럽의 생존 문제"라는 거침 없는 직설과 미국의 '나토 탈퇴 카드'까지 언급하는 압박에 방관하던 유럽 나토(NATO) 국가들도 움직였다. 이란이 러시아에 드론과 미사일을 공급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한 사실은 유럽의 '이란 국가 개조' 협력을 이끌어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기에 일본 역시 헌법적 제약(일본 헌법 9조,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을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명분으로 우회하며 미국의 옆자리에 합류했다. 일본은 자위대의 후방 지원과 중동 내 정찰 활동 확대를 통해 인도-태평양과 중동을 잇는 거대 안보 고리를 완성하며, 미국 주도의 신질서 속에서 독보적인 전략적 지분을 선점을 위해 그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한반도에 갇힌 한국, 글로벌 파트너 일본

일본은 미국 주도 중동해상안보연합(IMSC) 사령부에 소장급 제독과 참모진을 상시 파견한다. 작전 수립에 직접 참여하며 사실상 ‘지휘부’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연락관 파견이나 청해부대 중심의 독자 작전에 머문다. 미국이 일본을 ‘함께 판을 짜는 파트너’로, 한국을 ‘단순 우방’으로 분류하는 결정적 이유다.

일본은 또 호위함 외에 P-3C 대잠초계기를 지부티 거점에 상시 배치한다. 해상과 공중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입체 감시망을 제공한다. 특히 전용 법안을 통해 중동 자산 투입의 법적 근거와 지속성을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구축함 1척이 아덴만과 호르무즈를 오가는 제한적 구조다. 자산 규모와 작전 범위에서 일본에 현격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글로벌 파트너’를 선언했다. 중동 위기 시 일본 자산은 미국의 전술지휘통제(C4I) 체계와 완전히 통합돼 가동된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이 ‘상호운용성’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한반도 억제에 우선순위를 둔 한국의 ‘조건부 참여’와는 전략적 질적 수준에서 궤를 달리한다는 평가다.

■글로벌 안보 레짐의 재편과 동맹의 '질'

이런 상황에서 미 의회조사국(CRS)의 지난 16일자 보고서는 한국에 전례 없는 경고음을 발신했다. 한국에 방위비 증액, 핵 정보 접근 제한, 일본식 '글로벌 동맹' 전환을 요구하며 미일동맹 수준의 기여를 촉구했다. 미국은 의회 차원에서도 동맹의 신뢰도를 '역외 기여'로 평가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동맹이 북핵 억제와 글로벌 안보를 수호하는 '포괄적 파트너십'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핵심 정보 공유에서 배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기여와 혜택의 균형이 무너진 동맹은 실질적 국익 손실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일본이 미국의 중동 전략에 동참하며 '미래 지분'을 확보하는 상황에서, 중동 신질서 재편 과정의 기여도는 향후 재건 시장의 발언권과 직결된다. 행동하는 동맹만이 실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냉혹한 국제 정치의 함수를 보여준다.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NSS)이 트럼프 2기를 관통하는 전략적 기조라면,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미 의회의 초당적 CRS 리포트는 그 기조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지 '안전선'의 한계를 짚어주는 정교한 검토서다. 이 같은 측면에서 한국은 매우 무겁게 받아들여야하는 보고서로 평가된다.

■서울 테헤란로의 유산과 '상속자’의 조건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이란 테헤란의 '서울로'도 존재)는 1970년대 선배 세대가 일궈낸 한국과 이란 양국이 빛나던 시절을 공유했던 '전략적 유대감'의 상징이다. 이 도로명은 이란의 정치적 부침과 국제적 고립 속에서 그 의미가 은연중 퇴색된 측면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이란 내 K브랜드의 프리미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신정체제 이전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에 기반한다. 이란의 '정상 국가' 복귀와 함께 돈독했던 양국의 유산은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부활하며 그 가치가 새롭게 증명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설계하고 중동·유럽·일본, 나아가 중앙 아시아가 동참하는 중동 재편시나리오는 이미 실행 단계다. 하지만 위험을 분담하지 않고 안주하는 국가에 이란 재건의 열매를 공유할 여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선배 세대가 이란 사막의 모래 폭풍 속에서 일군 신뢰의 토대 위에 '실질적 안보 기여'라는 가치를 더해야 하는 이유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지적한 변곡점에서 주권국가의 책임을 다할 때, 테헤란로의 유산은 영속적 국익으로 승화될 수 있다.
중동 재건 시나리오 속 한국의 지분은 오늘 우리가 증명하는 동맹의 진정성과 전략적 책임의 총량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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