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법부 전문성

파이낸셜뉴스       2026.03.29 19:36   수정 : 2026.03.29 20:02기사원문

사건팀과 법조팀을 거치며 3년 넘게 판사와 검사, 사법경찰관들을 취재하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하나의 사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명제다. 동일한 사실관계라도 어떤 법리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천인공노할 중범죄가 되기도 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적 해프닝이 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어떤 관점을 들이대는지, 재판부가 얼마나 냉철하게 판결을 내리는지에 따라 한 개인의 생사가 뒤바뀌는 셈이다.

이들의 냉철함과 관점은 단순하거나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사회 일반의 상식선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단번에 수긍하는 판단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중의 상식과 사법부의 판결 사이에 이토록 깊은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법학의 고유한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법학은 "이 물건이 네 것이냐, 내 것이냐"를 따지는 재산권 분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사회·제도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면서 법학은 국가 통치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다져왔다. 여기서 '독자적 영역이 굳혀졌다는 것'은 단순히 법조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른바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뜻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사안의 본질을 꿰뚫고, 죄의 유무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 나름의 진리를 추구하는 고도로 특화된 논리체계를 구축해 왔다는 의미다.

특화된 체계 없이 일상적 감정이나 대중의 잣대만으로 법적 본질을 논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야만에 가까울 것이다. 요즘은 이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독자적 영역과 그 완결성을 가리켜 전문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이 전문성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지난 12일 이른바 '법왜곡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다. 이제 판사와 검사, 사법경찰관 등 형사사법 종사자들은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수행한 자신의 직무판단 자체가 언제든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위기감에 직면했다.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즉 분업 관계를 지키는 길이다. 형사사법시스템의 판단이 대중의 정서나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전문성 자체를 형벌이라는 수단으로 통제하려 든다면 결국에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분업 관계는 무너질 것이다. 판단의 잣대는 오직 철저한 학술에 기반한 법리와 종사자 개개인의 직업정신에 머물러야만 그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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