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으로 전기 만드는 '내 몸 배터리' 시대… 두께는 300배 늘리고 공정은 10초로 줄였다

파이낸셜뉴스       2026.03.30 05:56   수정 : 2026.03.30 05:56기사원문
<21>한양대 에너지공학과 장재영 교수팀
기존 대비 300배 두꺼운 유기 열전 부품 개발
진공 여과로 제작 한계 극복… 10초 만에 뚝딱
세계 최고 효율로 표지 논문 장식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체온이나 공장의 폐열처럼 버려지는 열을 전기로 바꾸는 부품을 마치 커피를 거르듯 10초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법이 개발됐다. 한양대학교 에너지공학과 장재영 교수팀은 그동안 너무 얇아서 성능을 내기 어렵거나 제작이 까다로웠던 유기 열전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입는 컴퓨터나 자가 발전 기기를 더 쉽고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내 몸의 온기가 배터리가 되는 세상


이 기술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면 가장 먼저 '충전기 없는 생활'이 가능해진다. 스마트워치나 몸에 붙이는 건강 체크 패치를 별도의 배터리 충전 없이 오직 체온만으로 하루 종일 작동시킬 수 있다. 소재 자체가 플라스틱처럼 가볍고 옷감처럼 잘 휘어지기 때문에 몸의 굴곡에 착 달라붙어 전기를 생산한다.

산업 현장에서도 혁신은 이어진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장의 배관이나 자동차 엔진 주위에 이 소자를 둘러주기만 하면, 그냥 버려지던 열을 알뜰하게 회수해 전력으로 바꿀 수 있다. 이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동시에 환경을 지키는 친환경 발전소 역할을 톡톡히 해낼 전망이다.

■10초 만에 완성되는 '300배 두꺼운' 소자의 기적


연구팀이 상자 속에서 꺼낸 핵심 비결은 '진공 여과 공법'이다. 기존 스핀코팅 방식은 용액을 기판에 얇게 펴 바르고 수 시간 동안 말려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소자의 두께는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200나노미터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장 교수팀은 전기를 만드는 핵심 입자들이 섞인 액체를 깔때기에 붓고 아래에서 공기를 강하게 빨아들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마치 종이 필터 위에 원두 가루가 쌓여 두툼한 층을 이루듯, 전도성 입자들만 필터 위에 차곡차곡 쌓이게 만든 것이다. 이 공정은 단 10초 내외면 충분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빠르다.

■압도적인 발전 효율


연구 결과는 놀라운 수치로 증명됐다. 단 몇 초 만에 거르기만 했을 뿐인데 필터 위에는 기존보다 300배 이상 두껍고 균일한 60마이크로미터 두께의 필름이 형성됐다. 일반적으로 소자가 두꺼워지면 전기 성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이 기술로 만든 손가락 마디 크기의 발전기는 약 15도의 온도 차만으로 LED 전구와 온습도계를 구동하는 데 성공했으며, 기존에 보고된 모든 유기 열전 발전기 중 세계 최고 수준의 출력 효율을 기록했다. 이는 고성능 발전 부품을 마치 찍어내듯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쾌거다.

이번 성과는 장재영 교수팀을 필두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희숙 박사팀, 국민대학교 이현정 교수팀, 그리고 미국 미시시피 대학교의 구본형 교수팀이 함께 일궈낸 공동 연구의 결실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은 이번 연구 논문은 에너지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의 최신 호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며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연구는 유기 열전 소자가 실험실을 넘어 우리 삶을 직접 바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얇은 포장지를 걷어내고 확인한 이번 연구의 알맹이는 우리 주변의 모든 열이 에너지가 되는 깨끗한 미래였다. 다음 주에도 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언박싱하겠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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