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외교' 시험대 된 이란전쟁

파이낸셜뉴스       2026.03.30 19:20   수정 : 2026.03.30 19:20기사원문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청된 아태 지역 이외의 나라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UAE가 APEC 회원국이 아님에도 아부다비의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하얀 왕세자를 특별 초청했다. 또한 왕세자의 방한에 화답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APEC이 끝난 뒤 보름여 만에 곧바로 UAE를 가장 먼저 국빈방문했다.

이 대통령의 UAE 국빈방문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국내 대표 기업인들도 대거 동행했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현지에서 가졌다. 양국 간 에너지·인공지능(AI)·방산 협력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반년도 되지 않아서 양국 간 외교성과는 뜻밖에 이란전쟁 와중에 빛을 내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전 세계적인 에너지 수급 비상이 걸린 와중에 한국은 UAE로부터 2400만배럴에 달하는 원유를 최우선 공급받기로 약속받았다. 덕분에 중동발 3차 오일쇼크 우려 속에서 한국은 꽉 막혔던 에너지 공급의 숨통을 틀 수 있게 됐다. 이번 원유수급 외교작전은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UAE는 원유 제공뿐만 아니라 우리 교민 대피를 위한 전세기까지 중동 국가 중 가장 먼저 제공했다.

위기상황에서 외교력의 중요성은 이란 전쟁 와중에 중동 곳곳에서 드러났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중동 주요국가 외교장관들과 일일이 전화통화를 갖고 한국 교민들의 대피 지원을 요청했다.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모인 우리 국민들을 급파된 공군 수송기로 귀국시키는 '사막의 빛' 작전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란 내 한국인들이 인접국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대피 도중 교민을 제외한 이란인 가족들의 국경 통과가 불허되는 돌발변수가 발생했지만, 외교채널이 즉시 가동돼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주한 이란대사관과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의 신경전에도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다. 주한 이란대사관은 숨진 하메네이 지도자의 사진과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는 현수막을 대사관 외벽에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공개적인 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호르무즈해협에 고립된 26척의 우리 선박에 한국인 선원 180여명이 남아 있고, 이란 현지에서 수십명의 교민 가족들이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이란전쟁 장기화 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후방 지원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핵추진잠수함, 핵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 민감한 협상을 앞두고 있다. 안보뿐만 아니라 통상 후속협상도 진행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우려된다.

이처럼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유연한 외교술일 것이다. 이란전쟁이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실용외교의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및 일본과 공조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공동 비판하면서 백악관의 반응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한편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중재외교에 나서는 국가들도 있다. 파키스탄, 오만, 튀르키예 등이 양국 사이에서 조용히 물밑 중재외교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이란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보지 않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도 폭격 우려 속에서 여전히 유지 중이다.
한국대사관은 이란에 4개밖에 남지 않은 서방 동맹국 공관 중 한 곳이다. 중립국인 스위스를 비롯해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이미 이란 대사관을 철수했다. 쉽진 않겠지만 이란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동맹국인 미국과 관계도 돈독히 유지할 수 있는 외교중재 묘책도 검토해볼 만하다.

rainm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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