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26조, 고유가 피해 큰 취약층 지원에 우선을

파이낸셜뉴스       2026.03.31 18:47   수정 : 2026.03.31 18:47기사원문
소득 하위 70%에 4.8조 쿠폰 지급
선거 의식한 선심성 예산 전락 안돼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31일 확정했다. 고유가 부담 완화에 10조1000억원, 민생안정에 2조8000억원, 산업 피해 최소화와 공급망 안정에 2조60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지방재정 보강을 위한 9조7000억원 지급도 포함돼 있다.

여야는 정부 예산안을 오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중동 전쟁 쇼크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유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배럴당 120달러를 넘본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536원까지 치솟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산업 현장은 전쟁 직전인 지난 2월만 해도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생산이 크게 증가했지만 지금은 공장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너지 수급 직격탄을 맞은 정유·석유화학업계는 말할 것 없고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 생산 전반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연구소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자동차 2·3차 협력사들이 도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국내 주력 제조업 전반에 조업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했다. 반도체산업도 공정에 필요한 첨단소재 조달이 원활치 않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L당 2000원에 육박하는 기름값에 화물차주, 영세업자, 서민층의 고통도 극심하다. 고환율·고금리가 밀어올리는 물가에 취약층은 더 허리가 휜다. 정부의 추경은 중동발 쇼크 확산을 막고 꺼져가는 경제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한 고육책이라 할 것이다. 신속한 집행으로 저소득층의 시름을 덜어주고 산업계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비상시국에 긴급히 마련된 추경은 초토화된 산업 현장과 취약층을 핀셋 타깃으로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고유가 직격탄을 맞은 업계와 원가 급등에 신음하는 영세 자영업자, 생계비 압박에 내몰린 저소득층에 집중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부 추경안은 의심의 눈초리를 살 대목이 적지 않다. 고유가 피해보상금으로 책정된 4조8000억원은 소득 하위 70% 이하 3580만명을 대상으로 한다. 소득과 지역 등에 따라 선별·차등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지급 대상이 무차별 국민 다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4조8000억원은 지난해 추경 사업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12조원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유류비, 교통비 경감책 등에 배정된 5조원까지 포함하면 고유가 부담완화 예산 10조원이 현금성 지원이다. 가뜩이나 요동치는 물가를 더 자극할 우려도 작지 않다. 그런 만큼 세부 집행 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다시 세우고 가장 급한 곳에 재정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재원을 적자국채 발행 대신 초과세수로 충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남은 세금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재정은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국가총부채는 지난해 6500조원으로 1년 새 280조원이나 늘었다. 올해 세수는 극한의 위기를 뚫고 이익을 낸 기업들의 법인세가 증가한 덕분에 늘었다. 초과세수는 천문학적 규모인 국가 빚을 줄이고 채무 증가 속도를 늦추는 데 먼저 쓰이는 것이 맞다.
미증유의 비상 국면이라면 그에 걸맞은 절박한 대상이 타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를 앞둔 선심성 포퓰리즘 추경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추경이 정치 이벤트로 전락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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